Page 136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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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아 놓은 기반이 있는 그 땅에서 그냥 눌러 앉아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포로 귀환이 한참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 제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그 사람들의 집안이, 조상들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포로 귀환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집안과 조상들은 하나님의 은혜보다 일신의 안락을 더 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 그들의 집안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에스더와 모르드개 자신들의 신앙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용감한 신앙의 투사들이었습니까? 비록 그들이 나중에는 그런
모습을 보여 줄지언정, 성경이 그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악하기 그지없습니다.
1) 모르드개의 이름을 보십시오. ‘모르드개’라는 말은 바벨론의 주신 ‘마르둑’에서
온 말입니다. 그의 이름은 마르둑을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와 그의 집안은 단지
거기서 살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저 섬기는 정도가 아니라
이름까지 그 신의 이름을 따서 지을 정도로 열렬하게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었을 때, 아이 이름을 ‘나까무라’나 ‘스즈끼’로 지은
정도가 아니라, ‘천황을 섬기는 자’라고 지었다면 이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에스더는 어떻습니까? 에스더의 본명은 “하닷사”(2:7)입니다. 원래
하닷사의 이름은 ‘도금양 나무’ 혹은 ‘화석류 나무’라고 번역되는 나무입니다. 성경에
화석류나무와 관련된 두 본문 (사 41:19, 55:13)에서 이 나무는 모두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된 나무입니다. 즉 에스더의 부모가 딸의 이름을 하닷사라고 지었을
때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원하고 지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름을
버리고 바사(페르시아)식 이름 ‘에스더’로 불렸습니다. 에스더의 뜻은 페르시아어로
‘별’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더
이상 본 이름 하닷사를 고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2)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왕후가 되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이 이후에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본토로 돌아가 그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할 마음이 있었다면, 그들이 과연 왕후선발 대회에 나갈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의 결심은 다름 아니라 다시는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서의 정체성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일신의 영달을 위해 왕후와, 정권을 잡은 유력한 권세자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고 바사 제국의 왕족이 되어
보겠다는 결심인 것입니다. 이들이 과연 존경받을 만한 신앙의 투사로서의 자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