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6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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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기회가 닿는다면













               이 책에 이어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교회 이야기』도 써 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직분이라는          것이      완전히       무너져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직분이란  필요에  따라  교회에  세워서  하는  것인데,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느냐?’고  하시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성경의  직분에  대해  공부를
               다시  하셔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교회  역사에서도  기독교회가  분명히  믿어  온  것은
               그리스도는  직분을  통해  교회를  세우신다는  사실입니다.  종교개혁  전통하에  있는
               기독교회들은  항상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개혁자들은  교회가  직분을  통해
               세워진다는  사실을  정말  잘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로마  가톨릭의  사제,

               부제,  추기경,  교황의  제도를  척결한  것이  누구입니까?  성경에  없는  거짓  직분들을
               모두  없애  버린  것이  개혁자들입니다.  에베소서  4장을  보면  주님은  자신의  부활과

               승천으로  인해  교회에  주어진  선물이  바로  ‘은사’  곧  ‘교회의  직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엡 4:7~16절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유해무  교수는  직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시며,  이  일을  위하여  인간들을
                       여러  직분에로  불러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은  그리스도의  직분과
                       유비된다……직분자들은              교회      교중들      가운데서       나와서       그들을      대하여

                       사역하면서  삼위  하나님을  대리한다.  이는  그들의  자질에서  나온  것이  결코
                       아니다.  이들을  세움으로  구원이  교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이
                       행하셨던        구원의      행위들이        이들을       통하여       교중에게        임함을      보여

                       준다……그러므로  직분은  분명히  가시적인  교회  가운데서  이루어지나  이는
                       교중이  제정한  것이  아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직분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신중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  좀  더  자세하게  다룰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고,  여기에서는  ‘교사’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교사’란  누구입니까?  주일학교  반사를  교사라고  보통
               지칭하는데,  그것은  옳은  것입니까?  통상적으로  교사  강습회나  교사  헌신  예배를  가



               1)   유해무,  『개혁교의학』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8), p. 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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