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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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적입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알지 못하는 두려움을 자극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지 못한 일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나쁜 일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그 이유가 어디 있는지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때 이런 내용이
설득력을 갖습니다. ‘네 조상의 죄 때문이다!’ 이것은 주술이지 성경이 아닙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 한 가지를 마저 풂으로 이 글을
끝내도록 합시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서도 독자들 중에서는 여전히 찜찜한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출애굽기 20장 5~6절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삼사 대까지 갚을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언약적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니 이
문장을 ‘문자적’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문자적으로 실현될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언약의 성격을 이해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저는 언약을 ‘언약적으로 이해하느냐, 기계적으로 이해하느냐의 문제’라고
표현합니다(재미있는 것은, 이 구절에서 ‘삼사 대의 저주’는 문자적으로 받으면서, ‘천
대까지의 복 ’은 문자적으로 안 받는 다는 점입니다. 삼사 대의 저주가 문자적이라면, 잘
믿는 자의 자손은 천 대까지 거저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말 그대로 자기 맘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한 사람과 맺지 않으시고, 인류 전체 혹은
그 가족들과 맺으십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내가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지만’ 인류
전체에 속한 나는 범죄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언약을 맺었을 때는
아담 개인과 맺으신 것이 아니라,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로서 인류 전체와 언약을
맺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언약은 ‘계승’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언약을 맺을 때,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언약을 맺지 않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과의 언약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이삭과의 언약은 ‘기존 언약의 갱신’이지 새로운
아들마다 새롭게 체결하는 언약이 아닙니다. 이 계승적 언약은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도, 그의 아들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게서도 꾸준히 지속됩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은 ‘계승적’입니다(왕하 13:23; 신 29:13).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인물들이 다음과 같이 탄식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