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P. 25

종종  보게  됩니다.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느  1:6)!


                   왜  자기가  범죄하지  않았는데  탄식합니까?  그것은  언약이란  하나님과  개인이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공동체가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었다면,  느헤미야  자신은  죄를  범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갖습니다.  자기도  그  언약  그룹  안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삼사  대에  걸친  저주’를  말씀하시거나, ‘천  대에  미치는  복’을  말씀하실
               때는  이러한  ‘언약적  차원’에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기계적으로  미치는’  무조건적인  복이나  저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과

               언약하셨을  때는  그  언약이  전  세대에  걸쳐  미칩니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맺었다면  우리는  모두  그  언약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  중  누군가가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면,  성경의  방식으로는  우리가  그

               조상의  허리에  있어서  함께  언약을  배반한  것입니다(히  7:10  참조).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은  그런  연유입니다.  우리  조상  중  누군가가  하나님을  거역했다면,

               하나님은  그를  향해  화를  내십니다.  화를  내시는  것은  몇  대에  걸쳐  계속  존속될
               것입니다.  우리  조상  중  누군가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면,  하나님은  그의  가문인
               우리를  향해  기쁨과  복으로  대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것은  기계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범한  것으로  인해  노여워하시면서, ‘삼사  대까지  저주가  미칠  것’을  말씀하셨다고

               해도,  그것은  삼사  대까지  기계적으로  미치는  저주가  아닙니다.  운명론적으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히키가  말한  것처럼  조상이  저주받을  짓을

               했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테두리  안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의  복과
               저주의  특징은  그것이  항상,  ‘언약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언약적’이라는  말은  언제
               어느  때이건  간에, ‘하나님께  순종할  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  저주를

               내리시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한  번  아담  언약의  예를  상기해  봅시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는  ‘전  인류에게  미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내가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음에도  그  저주  안에  있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내가  전혀  헤어  나올  수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