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9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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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린 글이 몇 차례 있었지만, 이 글은 누가 누구에게 쓴
것입니까? 곧 누가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쓴 편지입니까? 디모데전서와 후서는
사도 바울이 목사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물론 성경으로서 교회에
읽히는 목적으로 쓰였지만, 명령을 받는 일차적 주체는 당연히 목사 디모데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은 누구에게 주어졌습니까? 목사 디모데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 전파’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이 말씀
전파는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거나 길에 나가 전도하는 것을 의미할까요, 설교하는
것을 의미할까요?
2) 다음으로는 이 ‘전파하다’(혹은 ‘전도’, 헬라어로 ‘케륏소’)라는 말 자체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통상적으로 한국 교회 성도들은 ‘전도’라는 말을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지만, 원래 이 말은 성경에서는 ‘설교’와
대치시켜 사용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 성경에서 ‘전도’라는 말은 항상 ‘사자가 되다’,
‘선포하다’, ‘공포하다’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말씀을 전하는 주체자의 의지를
전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대부분의 경우 예수님이나
세례 요한 그리고 사도들에게 사용되었는데, 이때 이 말의 의미는 항상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었습니다(바우어 사전). 따라서 여기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말은 시나 때를 막론하고 길거리로 뛰어나가 전도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용어는 거의 ‘설교’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3) 이 전파의 내용도 생각해 봅시다. 2절 뒷부분은 이 전파를 다른 말로 풀어서
쓰고 있습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여기의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것은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다른 식으로 쓴
것입니다. 경책과 경계와 권하는 일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전도입니까, 아니면
설교입니까? 이것은 전도하러 밖에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까,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설교하는, 즉 말씀 선포 사역을 의미합니까? 세상에 어느 누가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전도를 하면서 ‘경책하고 경계하고 권한단’ 말입니까?
4) 말씀 전파의 명령 뒤에 나오는, 말씀 전파에 힘을 써야만 하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살펴봅시다. 3절 이후부터는 이후에 있을 교회의 모양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3절),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라 스승을 많이 두고”(3절),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