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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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도  없이,  그냥  좋아  보이면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점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구절들  중에  욥과  친구들의  대화  중에  있는  내용이


               이것  외에  다른  본문이  있습니까?  한국  교회는  욥기  전체에서(욥기는 무려 40장이
               넘는데도!)  가장  앞부분의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의  본문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특히  욥과  친구들과의  긴  논증이  전개되는  거의  40장  가까운  분량에서

               거의  아무  본문도  설교하지  않습니다.  단지  딱  이  한  구절뿐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을  이런  식으로  사용해서야  되겠습니까?  빌닷의  말을  사용해도  좋을지
               어떨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하나님이  그  말씀을  틀렸다고  말씀하셨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게다가  다른  본문은  전혀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우리  귀에

               그  말씀이  달콤하게  들리기  때문에,  온통  가게든  집에든  교회에든  도배가  되어  있는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해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6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창  18:23)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간구한  것인가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창  18:23).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려고  할  때,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선입견은  종종  성경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  버립니다.  그래서
               때로는  성경을  읽을  때,  순수한  관점에서  ‘과연  이  본문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라는  자세로  접근할  때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  책은  전체가  이런  발견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입견에  대한  좋은  예는  창세기  18장의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대화한

               사건’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본문은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막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한  사건으로  이해됩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의  아브라함을  소돔과
               고모라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막아선  ‘투사’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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