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9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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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그리고 이 누가복음 2장의 마지막에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직접적인 사무엘의 인용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는 이 말씀은 사무엘상 2장 26절로부터 가져온 것입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 2:26).
아이 사무엘이 자랄 때,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자라실 때에도 똑같이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사랑스러우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이 이 구절을 그대로
가져다가 사용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마치 사무엘처럼 자랐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리:두 번째 사무엘의 의미
이렇듯 누가복음 앞부분은 예수님을 온통 “사무엘과 관련된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두 번째 사무엘로 오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누가의
어법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사무엘로 그려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사무엘이 “사사 시대를 종식시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사
시대는 사무엘로 인해 종식되었습니다. 사사 시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과
반역이 그 키워드였던 시대,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 전체가 암흑과 도탄에
빠져있었던 시대, 그때가 사사 시대입니다.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은 이 사사
시대를 종식시키고 새 시대를 도래하게 한 나실인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사사 시대를 종식시키기 위해 오신 두 번째 사무엘이십니다.
주님은 불순종과 반역의 자기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이 사무엘로
그려지신 이유는 사무엘이 행했던 바로 그 사역을 ‘본질적으로’, ‘완전하게’ 자기
백성에게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자랄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예수님처럼 자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셨다”는 말씀은 그분이 두 번째 사무엘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이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무시한 채 그냥 성경 구절을 도용해 함부로 사용하지 맙시다.
주님의 사역이 가려지고 인간적 사고만 무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두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