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2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P. 422

왜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하는지

                   •  또  이를  받아서  주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는  당췌  무슨  말인지

                   •  끝으로  붙이신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말씀하는  것인지


                   이  본문은  온통  미스테리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주님이

               나다나엘에게  “내가  무화과나무  아래서  너를  보았다.”는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나다나엘을          본    것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을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적  용례를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문에  나와  있지  않은  이야기를  추론으로  덧붙여서  해석합니다.  그조차도
               심리적입니다.  오늘날  해석하고  있는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자,  또  보십시오.  나다나엘은  종종  무화과나무  아래에  가서  혼자  시간을
                       가지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시원한  그늘이  있는
                       곳이라  유대에서는  조용히  혼자서  휴식과  묵상하는  곳으로  사용  되었습니다.

                       나다나엘도  이런  일  가운데  하나를  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인간은  궁극적으로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구원자를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며  한숨  쉬고  있는  기회를  이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빌립의  소개로  나다나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자

                       ‘마음에  간사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나다나엘이
                       물으니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당시의  경건한  유대인들은

                       큰  그늘이  있는  무화과나무  아래서  율법을  묵상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보통  그
                       지역의  무화과나무는  크기가  5미터,  가지가  8미터로  사방으로  퍼져서  그늘이

                       시원했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비밀스런  장소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거리  어귀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으나  나다나엘은
                       하나님만  보시는  은밀한  곳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기도하는

                       나다나엘을  예수님은  통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가  혼자
   417   418   419   420   421   422   423   424   425   426   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