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6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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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똑같은 사건을 사도행전 10장 44절에서도 발견합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여기서도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현상은 가시적인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말할
때 성령을 받은 이들은 그 말씀을 듣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본 사람들은
베드로와 그의 일행들입니다. 성령을 받은 주체와 그것을 보고 인식한 주체가
다릅니다. 성령을 받기는 말씀을 들은 자들이 받았으나, 그들에게 성령이 임한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있었던 베드로와 그의 일행들이었습니다.
즉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그리고
오늘날 다수의 성도들이 생각하듯이 그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을 “느낀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성경은 성령을 받은 그들이 느낌으로 이를 안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모양을 타인이 목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것 역시 가시적 현상입니다. 이 모양이 어땠는지까지는 성경이 기술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이 사도행전 2장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든 다른 것이었든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타인들에게 보여지는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행전의 성령 임함을 내면적으로, 추상적으로 몰아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성령 임함의 사건은 독특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날 전혀 경험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도행전의 사건들을 지금의 것과 같은 것이라 말해서는 안 됩니다. 또 사도행전의
성령 임함의 사건이 지금과 다른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마음속으로 뜨거워지는 것을 사도행전 2장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 같은 성령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의 성령은 “불
같은 성령”이 아니라 실제 불인 성령이었습니다. 이것은 내면적으로 뜨거운 어떤
것을 경험하는 것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여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단지 신비주의적 영향일 뿐이지 성경적인 것은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