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8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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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신학에서 성령이 차지하는 위치는 지대합니다. 단지 그 차이점이 오늘날의
순복음처럼 “성령이란 사람에게 어떤 독특한 영적 힘을 불어넣어 주는
기운”이라거나, “사람에게 기적을 체험하게 하는 곧, 병 고침이나 방언, 기타
기적들을 맛보게 해 주는 능력”이라거나 혹은 “성령 세례를 받은(이미 믿은) 신자가
제2차적인 체험으로써의 새로운 경험, 곧 더 나은 영적 단계에 이르게 되기 위해
맛보아야 할 두 번째 거듭남”과 같은 것과 전혀 차원이 달랐을 뿐입니다. 개신교
신학에서 성령은 “말씀을 조명하여 신자가 매일 매순간의 삶에서 말씀을 따라
살도록 도우시는 삼위 하나님 중 한 분”이십니다. 오순절 주의자들은 전통적
성령관에 대해 “너희들은 성령론이 왜 없느냐.”라고 말하지만(그들은 체험만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전통적 신앙에서 성령은 신자의 모든 삶에 관여하시는
분입니다. 오히려 오순절의 성령론은 성령의 사역을 위에서 말한 대로 기적적 체험,
독특한 이적들 같은 것으로만 제한시킵니다. 이런 종류의 체험주의적, 신비주의적
신앙은 교회 역사 속에서 항상 이단으로 경계되어 온 영지주의의 발현이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성경이 밝히고 있는 성령 사역의 영역이 어디인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과연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성령은 오순절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적과 신비, 체험을 주는 영이시며, 오늘날의 움직임처럼 성령/은사
운동으로써의 성령 축제 같은 것으로 나타나도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성령은 부끄러워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전면에 대두되는 것 자체를
삼가고 계시는지에 대하여 성경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성격에 대해 제일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요한복음
14~16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왜 이 부분이 중요하냐면, 이 부분이야말로 예수님이
자신이 승천하시면서 내려보내실 성령에 대해 예수님이 직접 설명해 주고 계신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본문은 “예수님 자신의 권위 있는 설명이라는 점에서”,
“성령이 실제로 예수님 이후 내려오시는 사건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주님은 자신이 올라가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
주님은 자신이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후 주님은 자신이 단지
가실 뿐만 아니라(요 14:18,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자신이 가시는 대신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