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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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은  이  요한복음의  구절을  ‘로마  가톨릭  예배와  완전히  상충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예배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인  예배라기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육체가  원하는  것으로  가득  찬  눈에  보이는  것을  만족하게  하는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로마  교회는  이  말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나쁜
               예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이  말씀이  적용되지  않습니까?  제가  생각하기로는
               오히려  중세의  교회보다  지금의  교회들이  이것에  더욱더  대담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없는  예배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대담하게  도입합니다.  그리고  그
               도입이라는  것이  대부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꼬?’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흥미를  가질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지루해하지  않을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유익해하는  예배가  될지……온통
               이것에  관심이  쏠려  끊임없이  예배에  새로운  것들을  장착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정확하게  ‘성령  안에서’  혹은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영적으로  드리는’  예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선배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1항  “종교적  예배와  안식일”에  정확하게  이  사실에  대해  정립해  두었습니다.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은  그  자신이  친히  제정하셨고,

                       그  자신의  계시된  뜻에  의해서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떤  가견적인
                       구상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상상이나  고안  또는  사탄의  지시에  따르거나
                       성경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다른  방법을  따라서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우리가  예배를  위해  ‘뭔가를  고안해  내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오로지  ‘성경에  규정된’, ‘하나님이

               정하신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예배의  앞부분에
               함부로  찬양  집회를  끼워  넣고,  설교  앞에  꽁트나  스킷  드라마를  끼워  넣고,

               연말에는  예배를  촛불을  켜  놓고  온갖  잡다한  예식을  하는  행사로  만들거나,
               심지어는  예배  시간과  간증  시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예배  시간에  패션쇼를  하기도

               하고,  예배  시간에  사람들의  장이  되어  서로  인사를  하거나,  특송이라는  명목하에


               성서원, 1999), 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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