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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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이 본문을 보통 이런 식으로 가르칩니다. ‘이 네 친구들은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엄청 사랑했어요. 여러분도 친구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해요’(그런데 사실
성경에는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이 그의 친구들인지조차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본문으로 설교할 때, 설교의 주제는 보통 ‘중보 기도’가 되거나, ‘이웃을 향한 헌신’이
됩니다. 혹은 이것이 ‘전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주 간단한 질문 하나를 던지는 것으로 이 문제에 대한 교리적 문제를
제기해 봅시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친구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상식적이고 간단한 질문 하나만 생각해 보면 전혀 불가능한 이런 종류의
문제가 한국 교회 안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친구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일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만약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이 본문에서 강조되고 칭송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이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열심으로 한 중풍병자를 ‘구원한’ 셈이
됩니다. 성경에는 중풍병자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를 원했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부각되는 것은 이 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결국 ‘내가 열심히 기도하면 내 친구, 친척, 부모나 형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논지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이단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예수님 중심적 성경읽기입니다.
구속사적 성경읽기라는 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성경을 자꾸
‘인본주의적’으로 봅니다. ‘심리학적으로’, ‘교육학적으로’ 보는 것 역시 사실은
인본주의적으로 본다는 말 안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성경의
주인공이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아니고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 사건을 기록할 때 어디에 중심이 맞춰져 있을까요? 성경은 과연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이 본문을 기록했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중풍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 기술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정황을 통해 ‘추측’할 수 있을 뿐이지, 성경은
이에 대해 언질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병이 낫게 된 중풍병자의 믿음 역시 성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