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구원이란 무엇인가-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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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이러한 악과 고난의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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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이러한 죄가 있는 곳에는 항상 죽음의 요소가 따라다닙니다. 대지로부터 뿌리뽑혀 땅에서 분
리된 나무가 제한된 양분으로 살다가 죽듯이, 인간은 100년이라는 짧은 세월을 마치면 죽고
맙니다. 죄 때문에 일어나는 불안, 증오, 상처라든가 서로 싸우고 죽이고 하는 모든 악과 고난
은 죽음의 그림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0년 후에 올 죽음이 미리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
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안해하거나 증오 속에서 마음에 평안이 없다든가 다른 사
람과 상처를 주고받는 고난 속에 있다든가 하는 사실은 죽음의 그림자가 이미 우리에게 드리
워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은 사실상 이미 죽은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스스로의 자원으로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고 영위할 수 있다면 구원받아야 할 아
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악과 고난이 발생하고,
또한 그 악과 고난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이유 곧 구원받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제한된 자원 때문에 일어나는 악과 고난을 우리의 그 제한된 자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이유
우리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애초부터 구원받아야 할 이유가 발생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고 환
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교, 예컨대 불교나 힌두교나 이슬람교 같은 종교들뿐만 아니라 유
사 종교 가령 마르크스주의나 인류 문명에 대한 낙관론 같은 것들은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즉 스스로 종교심을 발휘하거나 수양을 잘하면, 또는 선한 행위를 많
이 하고 업적을 쌓으면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유토피아
를 건설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구체적인 계획안은 제시하지 않지만, 문명에 대한 낙관론자들도 이와
비슷하게 인류가 스스로의 지혜를 계속 계발하면 전쟁이 없고 평화로운 유토피아를 언젠가는
건설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문명 낙관주의는 계몽주의 이후 19세기의 자유주의에서 절
정을 이루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재발견하고 이성을 계발하여 교육을 시키고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킨다면 인간에게 악과 고난이 없고 싸움이 없는 평화와 풍요의 상태에 이를 수 있으리
라는 낙관론이었습니다.
그러나 1, 2차 세계 대전은 이러한 낙관론을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최고도로 ‘발달’된
과학과 기술은 인간을 최대로 ‘파멸’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바로 인간의 계발된 지성 혹은 인
간의 계발된 지혜가 인류 역사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죄악을 초래하였습니다. 두 세계 대전은
인간의 이성 계발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말았고, 인간의 근본 문제인 악과 고난을 이성
의 계발로써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이후 신학자들은 죄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종말론에 대해 더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명 낙관론은 금물
이와 같은 사상적인 변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도 문명의 발달에 대해 낙관하는 사람들이 많습
니다. 인간이 가진 지혜와 이성과 힘으로 언젠가는 모든 악과 고난에서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