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교화연구 2021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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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을 찾아가서 나눈 대화입니다.



              위산: 여름 내내 무엇을 했느냐?

              앙산: 땅을 갈아서 수수를 뿌렸습니다.
              위산: 음, 여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구나.
              앙산: 여름 내내 무엇을 하셨습니까?

              위산: 아침에는 죽을 먹고 낮에는 밥을 먹었다.
              앙산: 여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으셨군요.
              진리처를 찾는 고승들의 여정이 밭 갈고 밥 먹는 일상으로 내려와 있습니다. 진리가 이 세상

              을 초월하여 저 멀리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지요. 바로 여기가 사유와 수행의 터전임
              을 안 것입니다.
              중국에 조주선사(趙州禪師)라는 고승이 있었습니다. 조주선사한테 어떤 스님이 찾아와 물었

              습니다.
              스님: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조주선사: 밥은 먹었느냐?
              스님: 예, 밥은 먹었습니다.
              조주선사: 그럼, 그릇이나 씻어라.



              우리가 진리라고 하면, 구체적인 세계를 넘어서서 어떤 무엇인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진리는 어쩐지 변화무상한 구체성과는 다른 어떤 것 같습니다. 초월적이고 관념적인 어떤 형상을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런 것은 조작된 것입니다. 가공물이고 인공물이지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건
            구체적인 실재의 세계뿐이에요. 깨달음에 이른 선사들은 그걸 다 알지요. 진리는 어디에 있느냐?

            이렇게 밥 먹고 설거지하는 데 있다는 겁니다. 밥이나 설거지가 함축하는 의미가 뭐겠어요? 바로
            구체적인 세계예요. 이 세상의 진리라고 하는 것들은 세상 속에 있다, 성인이라는 것은 세상 속에

            섞여서 문제를 보고 세상 속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곧 구체적 세계 속으로 돌
            아오라는 가르침입니다. 추상과 관념의 세계에 젖어 있다가, 구체적 세계로 시선을 돌리는 일은 쉽
            지 않습니다. 일상이 하찮게 보이지 않고, 진리의 주재처로 보이도록 자신을 갈고 닦을 일입니다.


                                                                              - 최진석의‘인간이 그리는 무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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