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교화연구 2021여름호
P. 87
고 긁으면 긁을수록 가려움은 심해졌고 종기는 나날이 더 늘어만 갔습니다.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
다녔고, 그러다 명의 한 사람이 가려움증을 다스릴 명약을 일러주었습니다.
“당신의 그 병에는 우두전단향 가루를 잘 개어 발라야 합니다. 그 향가루 말고는 백약이 무효입
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좋다는 우두전단향 가루를 살 돈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며칠 전에도 유곽의
여인에게 안겨줄 꽃 한 송이를 살 돈이 없어 탑에서 부처님 앞에 올린 꽃을 훔치지 않았던가요. 하
지만 가려움과 통증을 견딜 수가 없어서 청년은 결국 살던 집을 팔았습니다. 집을 판 돈 60만 냥으
로 우두전단향 가루 6냥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 귀한 향가루를 몸에 바르면 그 즉시 가려움증은
씻은 듯 사라질 것이요, 보기흉한 종지도 순식간에 가라앉을 테지요.
청년이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향가루를 몸에 바르려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
다.‘욕정에 빠져 생긴 이 병은 내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생긴 것이다. 피부에 명약을 바른들 마
음의 병이 고쳐지겠는가.’
청년은 곧 그 귀한 향가루 6냥쭝을 들고서 자신이 꽃을 훔쳐낸 탑으로 갔습니다. 그 탑에서 이렇
게 참회하며 기도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과거세에 온갖 고행을 닦으시며 괴로움과 불안과 재난에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는 이 한 몸을 다스리지 못하여 또 한 번의 윤회를 하게 됐습니다. 바
라건대 세존이시여, 지금 이 괴로운 제 몸을 불쌍하게 여기셔서 이 고약한 종기를 제거해 주소서.”
청년은 간절한 마음으로 발원한 뒤에 우두전단향 가루 2냥쭝으로 꽃값을 갚고, 또 2냥쭝으로는
성심껏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나머지 2냥쭝으로 깊이 참회하였습니다. 청년의 기도가 끝나자
이내 온몸을 뒤덮었던 종기와 고름이 씻은 듯이 사라졌고, 그의 털구멍에는 향기로운 전단향 내음
이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찬집백연경』)
경전은 곧이어 이 청년은 이후 세세생생 태어나는 곳마다 향기를 뿜었고 걸어 다닐 때면 연꽃이
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나 동화 같아서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하실 건가요? 하지만 이야기 속
에서 청년이 자신의 병의 원인을 제대로 짚은 대목을 허투루 흘려서는 안 됩니다. 몸이 아프면 병
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야 하지요. 하지만 아무리 큰돈을 들여 좋은 약으로 몸을 고친다 해도 마음
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몽의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도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사실. 불자님들은 아마 익히 잘 알고 계실 겁니다.
- 이미령 불교칼럼리스트의 『이야기로 배우는 부처님 말씀』 중에서 -
새김거리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