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부산대첩 소식지(창간호 vol.1)
P. 20

● 한눈에 보는 부산대첩 승전로






                                             김해강                                                    ●          부산포
                                                           양산강



                                                                                           ●



                                                                 ●                            ●
                                                                               ●
                     ●


                                                                      ●
                 ●













               천성항         동매산                          장림포       화준구미       서평포        초량목        절영도


           부산대첩 승전로 탐방 - ① 가덕도




            “전후 네 차례, 열 번의 접전에서 번번이 승첩을 거두었으나 장수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부산싸움보다 더 큰 것이 없었습니
           다.” 이순신장군의 장계에서 기록된 것처럼 부산대첩은 왜적의 소굴이자 전진기지를 폭파해 전투능력을 상실케하고 해상 퇴로를
           위협, 제해권을 장악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조선침략 전략을 전면 수정케했던 의미있는 해전이었다.
            임진년 첫해 치러진 4대 승첩인 옥포해전, 사천해전, 한산대첩, 부산포해전(부산대첩) 중 이순신이 최고의 전투로 꼽았던 부산대
           첩은 당시 왜군이 부산을 전진기지로 500여 척의 전선을 정박해두고 있었으며, 상시 6~7만 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던 침략거점

           기지였다. 이곳을 전면 공격, 왜적선 150여 척을 깨부수었다.


            부산대첩은 임진년 9월 1일(양력 10월 5일) 새벽, 가덕도를 출발해 몰운대를 지나 화준구미에 이어러 왜적선 큰 배 5척을 격파하
           고 다대포에서 큰 배 8척, 서평포에서 큰 배 9척, 이어 절영도앞에서 큰 배 2척 등 전날에 이어 모두 34척의 왜적선을 격파하는 전
           투를 치르며 부산앞바다에 이르렀고, 사전에 절영도 안팎을 수색, 쾌속정을 보내 적의 기지를 탐색 후 출격, 왜적의 선봉함대 대
           선 4척을 집중포격하며 부산포에 정박해있던 적선 100여 척을 깨부수는 대 성과를 올렸다. 이 전투에서 아끼던 정운 장군을 잃었
           지만, 이순신 장군 스스로 장수들의 공이 제일 컸던 큰 전투였다고 장계를 올렸다.
            그림은 왜적선을 격파해가며 부산포에 이르러 왜적 본거지를 격멸하기까지 부산대첩을 완성한 주요 전투지점을 그린 요도이다.



                                                                                                김성경 기자



           20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