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7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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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와신상담의 현장



                         효종은 삼전도의 치욕을 씻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북벌을 추진했던 국왕이다. 그러나 효종과
                       북벌의 방안을 논의했던 우암 송시열조차 효종에게 수신(修身)을 강조했을 뿐 무력을 동원한 실
                       질적인 북벌에는 찬동하지 않았다. 영조와 정조시대에 활동했던 연암 박지원은 북벌정책의 문

                       제점을 ‘허생(許生)’이라는 소설 주인공의 입을 빌려 훈련대장 이완(李浣, 1602~1674)을 꾸짖는
                       형식으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었던 정조는 효종의 실천적 자세를 본받
                       으려고 노력했다. 정조가 효종에게 각별한 마음을 쏟았던 것은 아버지 사도세자가 효종을 매우

                       존경했기 때문일 것이다.
                         광해군과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정조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의 국왕들은 독산성과

                       남한산성, 그리고 강화도의 관리에 정성을 쏟았다. 세 곳은 모두 수도 한성을 보호하고, 유사시
                       에는 국왕이 머물러야할 피난처였기 때문이다. 독산성은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
                       가 잠시 피신했던 곳이며,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5 동안 13,000명 군사들과 함께

                       청나라 군대에 맞서 싸웠던 곳이다.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항전했으나 세자가 피난해 있던 강
                       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끝내 항복을 결정하고 말았다. 남한산성은 청군에게 결코 함
                       락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한산성은 오랫동안 치욕의 공간으로 기억되었다. 정조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일들을 깊이 성찰했다. 1779년 8월 7일, 남한산성 서장대에 오른 정
                       조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을 수행하던 수어사 서명응에게 이렇게 토로했다.


                         “이곳의 형승(形勝)은 천험(天險)이라 할 수 있다마는, 무비(武備)가 닦이지 않아서 한 번 전란
                       을 당하면 수습하지 못하니, 어찌 지리(地利)가 부족한 것이겠는가?”                   9)



                         남한산성이 비록 천혜의 요새이긴 하지만, 우수한 무기를 갖추지 못하고 장수와 군사들의 실
                       력이 부족하여 패배했던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항복한 삼전도의 치욕은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남한산성도 수난을 비껴가지
                       못했다. 삼전도 항복 직후 청나라의 강요로 성곽 대부분의 시설을 우리 군사들의 손으로 허물어

                       야했던 것이다. 전쟁에 패한 대가로 치르게 된 뼈아픈 경험이다. 청나라의 감시와 간섭이 약화
                       된 이후 여러 차례 남한산성의 축성이 논의되고 부분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조가 즉




                       9) 정조실록 8권, 정조 3년 8월 7일 무오 17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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