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3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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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춰볼 때 독산성을 수축했던 기록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독산성을 개축하는 공사는 7월 25일부터 시작되었다. 독산성 중군 이한흥과 대솔 군관 민광

                       록에게 전적으로 위임하여 패(牌)를 나누어 공사를 감독하도록 했다. 도령(都領)은 독산성의 장
                       교 이정은이고 색리는 최기조이며, 일패장은 독산성의 장교 김천일이고 색리는 이무대이며, 이
                       패장은 장교 이진복이고 색리는 기성헌이다. 달포가 지난 9월 13일에 개축 공사를 마치고 회를

                       발랐으며 20일에는 기와를 덮고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실무 책임자로 활약한 독산성 중
                       군 이한응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훈련원정을 비롯하여 대흥산성 중군, 갑산부사, 어영
                       청 중군, 부호군, 선천부사를 지냈던 이력을 보면 정조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던 뛰어난 무인으로

                       파악된다. 독산성 중군으로 독산성 수축을 한 공을 인정받아 이듬해 수원 중군으로 자리를 옮겼
                                           19)
                       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원유수부에 소속된 속오군을 비롯해 연인원 5,031명이 역사에 참여하여 각각 하루씩 부역
                       했다. 수고비를 포함하여 개축에 들어간 물자는 경기도의 돈 2000냥, 총융청의 1000냥과 쌀
                       100섬 안에서 계산하여 지급하였다. 독산성의 둘레가 1,004보(步)인데 새롭게 쌓은 부분이 732

                       보이고 보수한 부분이 272보이다. 독산성의 3분의 2 이상을 이때 새롭게 쌓았던 것이다. 이때
                       수문(水門) 3곳을 전부 개축했으며, 309보에 이르는 성가퀴[타(垜), 혹은 여장(女墻)]를 전부 신
                       축하여 기와를 덮고 회를 발랐다. 남장대(南將臺) 6칸은 안쪽으로 3자를 옮겨 건축하고 단청을

                       고쳤다. 남문루 8칸은 들보 위에 회를 바르고 문의 확쇠 1개를 새로 바꾸어 달았다. 서문루 8칸
                       은 보수하고 기와를 덮었다. 북문은 좌우로 석축을 고쳤고, 성문 2개를 새로 달았다. 동문은 좌
                       우로 석축을 고쳤고 성문 2개를 새로 달았으며, 문의 확쇠 1개를 새로 달았다. 주목되는 것은 남

                       한산성을 개축할 때 사용했던 벽돌 대신 기와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공사가 완료되었음을 보고
                       를 받은 정조는 다음과 같은 전교를 내렸다.

                         “산성을 새로 수축하여 수개월 안에 낙성하였으니 매우 다행이다. 역사를 시작할 때의 고유
                       (告由)에 이미 예전 규례를 사용하였으니 완공했을 때에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해당 조로
                       하여금 날을 잡아 설행하게 하라. 제문도 친히 지을 것이다. 헌관과 여러 집사는 처음 고유할 때

                       의 규례대로 하라. 감동관인 중군 이한흥은 가자하고, 군관과 읍 장교는 상을 내리고 …산성을
                       중시하는 것은 원침에 아주 가깝고 또 경진년(1760)에 사도세자가 어가를 멈추고 유숙했던 곳

                       이기 때문이다. 장대(將臺)는 바로 진남루(鎭南樓)로 선대왕(영조)께서 올랐던 곳이다. 지금 수




                          무원으로 복원 공사에 참여했던 이낙천 씨가 증언한 내용이다.
                       19) 이한흥의 이름은 <정조실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에는 여러 차례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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