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6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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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 물이 넘어서 잉어, 붕어들이 못 나가서 많이 잡아내고 그랬지.
- 53년도 대홍수는 저 아래쪽에서 물이 올라온 거고, 70년대는 오산천이 범람한 건가요?
▲그전에 제방이 넘는다고 남촌인가 얕으니까 제방하고 수위하고 왔다갔다했어요. 그런데
넘진 않았어. 하여튼 저쪽 밑창에 물이 빠져나가는 배수로가 좁으니까 물이 빠지지 못하니
까 물이 역류가 되는 거지?
- 1950년대 1953년대 싸전마당이나 미시장에 상가가 몇 개정도 있었나요?
▲상가? 6·25사변 후에는 상가, 포목상, 광목과 옥양목 파는 데 있었고, 건어물가게가 있
었고, 먹는 거, 선술집, 잡화 등이 있었지.
- 정식 건물로 있었던 가게는 몇 개인가요?
▲건물은 몇 개 없으니까 집이 몇 채 안 됐으니까. 60, 70년대 오산시에서 시장은 사람 많이
모여들고 해서 옛날에 소매치기가 많아서 어려움을 당하고 그랬지.
- 보건약방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나는 1956년도 5월 1일부터 이곳에서 했어요. 62년간 오래했지.
- 외람되지만 1956년부터 지금까지 했으면 돈을 많이 버셨겠네요?
▲(그 당시에) 약방이 8군데인데, 우리가 가장 많이 벌었는데, 장날은 착실히 해서 그렇겠지
만 (약을 사려고)줄을 설 정도였어요.
- 그때는 주로 파는 약이 어떤 약이지요?
▲일반약이지 뭐. 소화제, 감기약, 설사약, 매상약.
- 장날에 손님이 줄을 설정도로 많았나요?
▲장날 하루 파는 것이 평일 나흘 파는 정도 됐으니까 팔기도 많이 팔았는데, 옛날에는 먹지
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니까 저항력이 떨어져 질병은 많은데 병원이나 약을 사려고 해도 돈
이 있어야 하는데, 소득이 없잖아. 농사 조금 져야 먹고살지도 못하는데 대개 한 10만 원어
치를 매출한다면 30∼40%는 외상이고, 50% 정도는 소득이 있는데…. 우리 시대는 외상거
344 강경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