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7 - 오산문화총서 2집
P. 347
래를 하고 물건을 포목이고 뭐고 해서 1년에 쓰고 가을에 농사를 지어서 추석 대목, 설 대목
에 갚는 거야. 옛날에는 외상 제도가 보통이야. 돈 없는 사람들이 아프긴 하고 약은 가져야
하고 하는데 가져가면 돈을 내려고 해도 돈을 낼 형편이 못되잖아, 먹고살기 어렵고 그러니
까…. 70년대 말 정도에 결산해보니까 1년에 150만 원 정도를 못 받은 게 있더라고, 오산 1
리, 2리, 3리 해서 부락마다 장부 처리해서 액수가 많은 데는 나중에 직원들 시켜서 받아오
라고 하니까 받긴 돈 있어야 받지 뭐.
- 그때는 종업원이 몇 명 있었나요?
▲종업원이 2명 있었지. 매상으로는 웬만큼 되는데 외상으로 못 받은 것이 있어서, 다 받았
으면 오산에서 재벌 됐을 거야. 지금 생각하면 좋은 일했다. 어려운 분들 도와줬다 하는데
옛날에는 어려웠으니까 할 수 없지 뭐.
- 예전에 싸전마당이나 우시장에서 큰불이 났다거나 큰 사건 같은 것이 기억나는 게 있어요?
▲거기는 화재는 없었어. 홍수만 있었고 도로가 대풍약국하고 골목으로 해서 들어가는 첫
골목 위에 올라가서 위 골목이 골수막거리가 있는데 거기 양조장이 있었고.
- 오산시에서 현재 싸전마당 즉 오산장터를 정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도 거기 고문인가 그래요. 그래서 여러 번 (회의에) 참석하고 했는데 거기가 제대로 되
려면 문화골목을 제대로 해야지. 이장희 결혼식도 내가 가고 했는데 이장희를 데려다가 어
쩌고 하는데 그것이 뜻은 좋은데 제대로 자리가 잡히려면 내가 봐서는 단시일에는 어려울
거 같더라고 자리가, 그래도 먹을거리라든가 특색 있는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오산장(오산오색시장, 오매장터)의 역사성 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