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1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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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사무소나 관공서는 어디에 있었나요?
                           ▲그때 면사무소, 후에 오산읍사무소는 금성아파트 자리에 있었어요. 저희 작은 외할아버

                         지가 면사무소 옆에서 한약방을 하셨어요. 그래서 한약방을, 작은 외할아버지댁에 와 보니
                         까 거기가 면사무소 옆이었고 그래서 알게 되었고요. 그리고 그 아래로 내려가서 농협이 있
                         었어요. 그 아래 우체국이 있고 파출소가 있고, 오산지소가 있었고 그랬던 것이 생각나네요.

                         오산비행장에 대한 기억은 제가 잘 모르고요. 지금으로 말하면 문화예술회관 자리, 투마트
                         자리 거기지요. 거기에 수원비행장에서 비행기가 뜰 때 비행기를 행로를 잡아주던 신호를
                         보내주는 곳이었어요. 수원 비행 통신대가 있었어요. 거기는 얕았어요. 물이 얕고 넓은 게

                         모레가 금빛모레였어요. 얕고, 거기를 떠나서는 물이 굉장히 깊었어요. 남촌다리 거기까지
                         깊어서 아이들이 그 당시에 드럼통을 잘라서 배를 타고 놀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1970년대

                         같네요.


                        - 오산천 제방에 대해서 기억하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1965년도예요. 1965년도에 용인 고매리저수지 제방이 무너진다고 그래서 밤 11시에 사이
                         렌이 불고 그랬어요. 결국은 무너지지는 않았는데 남촌 쪽으로 물이 넘치고, 새장터 쪽에 물
                         이 넘치고 해서 오산시장 사람들이 피난을 갔어요. 오산중학교와 오산고등학교, 갈곶리로

                         갔는데, 어떤 분은 밀머리 과수원으로, 오산중·고등학교의 청학산 그리로 많이들 가셨어
                         요. 저희도 그리로 가고, 저희 집 양반은 그때는 가평옥이 제일 높아서 가평옥이 3층이니까
                         그리로 올라간 거예요. 가장들은 남았으니까.



                        - ‘가평옥’이면 예전에 요정이라고 했던 곳 말인가요?

                           ▲예 요정이에요. 가평옥, 오산옥 등 오산식품을 기준으로 그 둘레가 다 오산장이었어요. 그
                         당시에 오산식품이 제일 컸었으니까요. 그리고 장사가 제일 잘됐으니까 그걸 중심으로 해서
                         고무신가게 등등해서 형성되었던 거지요. 저희(오산식품) 아래로 해서 생선집들이 쭉 생겼

                         어요. 오산식품 앞쪽을 진전골목이라고 해요.



                        - 골수막거리는 가평옥 앞으로 해서 흥아네집까지 형성된 거지요?
                           ▲예 거기가 골수막거리입니다. 우리 집 오산식품 앞으로는 진전거리, 생선집이 있었고. 할
                         머니집 진전골목에는 빵집이 있고, 떡집이 있고, 서울옥이 있었고 신흥옥이 있었지요. 오산

                         에서 장을 보고 소를 팔고 그러면 한잔들 걸치고 가야 되니까 오산식품 앞으로 와서 거기서



                                                                   오산장(오산오색시장, 오매장터)의 역사성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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