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4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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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오산식품을 하면서 여태껏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름(상호)을 갈아보지 않았어
요. 그때도 오산식품이고 지금도 오산식품이죠. 그 당시에는 세금들 많이 내서 ‘모자를 갈아
쓴다.’라고 해서 (상호를)바꿔 썼거든요. 그래도 저는 바꾸지 않고 꾸준하게 한 상호로 지금
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오산식품을 3대째 경영하신 건가요?
▲그렇죠. 3대로 봐야지요.
- 수입이나 매출에 대한 내용을 알려주세요?
▲그런 거는 없고 단단한 땅 위에 물 고인다고 절약하면서 열심히 사니까 아이들 공부 가르
치며 그렇게 살아만 왔습니다.
- 수입도 괜찮으셨지요?
▲그 당시에 자동차 있고, 냉장고 있고, TV 있고, 그러면 못 사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 부자였네요?
▲아니요. 부자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랬어요. 왜 우리는 없는 게 없어서 그때는
손 들으라고 했잖아요. 왜 우리는 없는 게 없어서 애들한테 창피하게 만드느냐고 떼쓴 적도
있었어요.
- 사장님이 사회적으로 봉사한 것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그때 로터리클럽에 장학금을 6천만 원을 내놨어요. 2008년도에 제가 칠순이었거든
요. 70세가 되어서 아이들이 칠순잔치를 해준대요. 그래서 나는 칠순잔치 안 한다. 너희 아
버지도 안 계시고 그런데 내가 무슨 칠순을 하겠느냐. 난 그걸로 장학금을 내놓겠다. 그랬더
니 어디에 내놓겠느냐고 그러더라고요.
- 6천만 원이면 큰돈인데요?
▲그래서 제가 장학금을 3천만 원만 내놓는다고 그러니까 우리 큰 애가 “어머니가 언제 또
장학금을 내놓으시겠느냐며 3천만 원 더 해서 6천만 원 내십시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
가 6천만 원을 국제로터리 3750지구에다 내놨어요. 그리고 별개로 지금까지 대학생 2명에
352 강경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