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0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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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전 시기에 말씀 들은 건 없나요?
▲그전에 한번 외가댁에 왔을 때 뚝방길을 걸었을 때 현재 테니스장, 시민회관 있는 곳 그쪽
에 잠깐 (우시장이)있던 걸 본 기억이 나요. 그리고 제가 시집을 오니까 새장터로 가 있더라
고요. 그런 기억이 나고, 그때는 자세히 안 봤지요. 시집오고 나서 기억하고 그러지요.
- 오산장에 대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뚝방길(오산천 제방)에 집들이 쭉 있었지요. 그게 저 시집와서도 있었어요. 그 집들이 있
었어요. 1964년 이전부터 있었고 뚝방길에서도 장이 섰습니다. 장이 섰을 때 그 당시에는 나
무(땔감용)를 신리, 중리, 남사면 이런 데서 해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거기 나무장이 있었어
요. 나무장이 서면서 지게 같은 거 팔고 낫 같은 거 팔고 먹물점이라고 했지요. 지게 팔고 하
는 그걸 먹물점이라고 했어요. 먹물점이 그때 서고 그때는 사람들이 종이가 귀할 때니까 왕
골로 엮은 지직자리들을 깔았어요. 지직자리들을 남사면 이런 데서 엮어서 나와서 돗자리,
지직자리 그런 거 팔고, 그때 그런 장이 선 걸로 기억나고 또 뚝방 아래로는 그때 지금으로
말하면 철공소지요. 철공소 있던 걸로 생각되고 낫 만들고 호미 만들고 하는 대장간도 거기
뚝방 아래에 있었어요.
- 뚝방 아래라는 것은 냇가 쪽을 말씀하시나요?
▲그래요. 냇가(오산천) 쪽. 나무 장대를 세워서 집을 짓고 그 아래로 그런 대장간 철공소가
있었어요. 무당집들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시집와서 아팠거든요. 그랬더니 우리 어머
니가 뭐가 따라왔다고 무당집을 데려가는데 제가 무당집을 처음 가봤어요. 그래서 놀란 적
이 있어요.
- 그 당시 오산장의 거래 물건이나 경제 규모가 어떠했나요?
▲제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굉장히 시장규모가 컸습니다. (오산천)뚝방에는 장이 서고
그 아래 송씨네 고무신가게, 삼형제 화남상회 그쪽으로는 다 노점들이 와서 장을 봤어요. 그
래서 저희도 그때는 장사가 굉장히 잘됐었어요. 마도면, 삼화리, 무낭리, 서탄면, 용인 천리,
남사면, 송탄, 수원, 안양에서까지 왔었어요. 오산장을요. 그리고 정말 소매치기들이 많았어
요. 오산서 돈 못 벌어 가지고 가면 소매치기가 아니다. 그럴 정도로 소매치기도 많았어요.
그럴 정도로 그렇게 활성화가 잘 된 거지요. 오산장 경제가.
348 강경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