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오산문화 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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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테마가 있는 인문학 기행


                   기의 큰 축을 이룬다. 청상의 몸으로 다 기울어져               인 강호와 강태도 강력한 전운을 드리우며 위기감을 고조시
                   가는 이씨 집안을 힘겹게 일으켜 세운 청암부인,                키는데... 작가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소설의 본 줄기보다도
                   그리고 허약하고 무책임한 종손 강모를 낳은 율촌                더 정성스럽게 당시의 풍속사를 아주 정교같이 묘사하고 있
                   댁, 그 종손과 결혼한 효원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다. 첫 장면인 혼례의식을 비롯해서 연 이야기며, 정암부인
                   들이 전통사회의 양반가로서 부덕을 지켜내는 보                 의 장례식, 그리고 유자광이나 조광조, 새로 쓰는 백제사의
                   루로 서 있다면, 그 반대편엔 치열하게 생을 부지               이야기도 돋보인다. 여기에 조왕신의 습속이나 복식에 대한
                   하는 하층민의 거멍굴 사람들이 있다. 특히 양반                묘사, 윷점이야기 같은 내방의 섬세한 면면들도 감탄과 찬
                   계층을 향해 서슴없이 대거리하는 옹구네와 춘복                 사를 이끌어 낸다. 만주 봉천땅의 구체적인 지리묘사라든지,
                   이, 당골네인 백단이가 강력한 긴장감을 유발시킨                사천왕의 긴 이야기도 사물에 대한 안목을 새롭게 키워주는
                   다. 이런 갈등의 그물은 우선 효원과 혼례를 치른               대목이다. 작가가 암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미완성의 작품이
                   강모와 사촌 여동생인 강실이 사이에서 시작된다.                되었다.
                   애틋하게 바라만 보아오던 두 사람이 마침내 넘
                   지 말아야할 선을 넘음으로써 제각기 가파른 벼랑
                   으로 내몰린다. 우유부단한 강모는 기생 오유끼와                세 번째 답사 - 강화문학관
                   함께 머나먼 만주 봉천 땅으로 도피를 해버리고
                   강실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홀로 삭이며 닥쳐                6월 23일(금) 오전 7시 30분 오산문화원 출발→오전 9시 20
                   오는 암운 앞에 무방비로 놓인다. 한편 이들에 대               분 강화 도착→강화평화전망대→화문석문화관→강화역사
                   한 소문이 거멍굴로 전해지고, 자기 자식만은 자                박물관, 고인돌공원→점심→고려궁지→강화문학관→광성보
                   신과 같은 운명에 놓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 춘복                →초지진→오산문화원 도착
                   이는 양반댁 강실 아씨를 탐내기 시작한다. 춘복
                   이와 몰래 동거를 하던 옹구네도 양반에 대한 복                강화문학관은 인천 강화출신의 수필가 조경희 선생의 유지
                   수심, 그리고 춘복이를 잃고 싶지 않은 집착에서                에 의하여 건립한 문학관이다. 2005년 8월 타계한 조경희
                   남모를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 음모란 사건의 소               작가가 강화군에 기증한 소장품 8,000여 점을 안전하게 보
                   문을 퍼뜨려서 강실이를 내치게 하고 그때를 노려                관하고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한 고인
                   춘복이가 강실이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은밀히 옹                의 수필문학에 끼친 업적을 영구히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
                   구네가 퍼뜨린 소문은 그물처럼 강실이와 효원을                 다. 1층 전시실에는 한국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이규보와 정
                   조여들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춘복이는 강실이를                철, 정제두 등 강화도와 관련이 있는 옛 문인들의 작품을 소
                   범하여 임신하게 된다. 이후 이런 모든 정황을 알               개하고 있으며, 2층 수필문학관에는 조경희 선생의 육필원
                   게 된 효원은 애증이 교차된 마음으로 강실이를                 고와 생전에 사용하던 책상, 안경 등과 미술품 40여 점의
                   피접시키려 한다. 그러나 옹구네가 중간에서 강실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조경희 작가는 1918년 4월 6일 인천
                   이를 납치함으로써 상황은 예기치 않은 국면으로                 강화도에서 출생하여 2005년 8월 5일에 사망하였다. 1939
                   치닫는다. 여기에 이씨 문중의 노비인 침모 우례                년 이화여전 문과를 졸업했으며, 1938년 『한글』에 「칙간 단
                   에게는 상전의 피가 흐르는 아들 봉천이가 번뜩이                상」, 『조선일보』에 「영화론」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39
                   는 비수처럼 성장해 가고, 청암부인의 묘에 투장                년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1945년 『서울신문』기자, 1951년
                   을 했다가 덕석말이를 당한 당골네의 원한도 무서                에는 『부산일보』 문화부장, 1963년 이후 『한국일보』부녀부
                   운 똬리를 틀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계급적 모순                장, 논설위원. 1959년에는 여기자클럽 회장에 취임. 문단활
                   을 인식하고, 그것을 타파하려는 강모의 사촌형들                동에도 두각을 드러냈는데, 1974년 한국예술인총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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