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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제수(祭需) 물품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이에 오산시 마을신앙의 의의를 정리 165
하면 다음과 같다. 구비전승
첫째는 자연신인 산신과 인격신의 조화이다. 20개의 법정동에 고르게 마을신앙이 전승되었으며 이 · 민속
는 주로 산신을 주신격으로 하고 있었다. 농경지와 임야의 면적이 오산시 전체면적에 50%를 조금 넘 · 경기도당굿과
게 분포하고 있는 사실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실과 같이 토
지신에 대한 신앙 역시 왕성하게 전승되었다고 여긴다.
그러한 근거로 부산동을 예로 들 수 있었다. 전문예인집단이던 경기재인청의 본거지가 부산동에
경기재인청
있었음으로 기인된 것으로 추단한다. 또한 궐동의 경우 곡부 공씨의 집성촌이면서 궐동의 입향조로
전하는 공서린 선생과의 깊은 관련성 속에 유교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더하여 갈곶동의 경우 강씨(康氏)좌상(左相)을 마을의 신격으로 모시고 있는 것도 오산시의 마을신앙 / 성씨
이 인격신을 마을의 대동조상으로 모시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 인물
둘째는 제수(祭需)의 물품이 마을의 형성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부산동의 경우 용왕을
위한 마을신앙과 무속을 통하여 드러나는 용떡을 제수로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은 동해안의 굿
에서 용왕께 올리는 것으로 용떡이 올려지는 것을 보았지만 내륙지역에서 용떡이 올려지는 것이 조
사된 사례는 전무할 것이라 추정한다. 경기도의 바닷가 마을신앙에서도 용떡이 올려지는 경우는 조
사된 바 없었다. 이는 아마도 오산천의 물길이 부산동의 가마뫼와 맞닿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
15)
정할 수 있다.
그리고 궐동의 제수와 금암동 제수의 유사성도 매우 의미 있는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금암동은 궐
동과 세교동에 접하여 있으면서 양쪽의 문화적 특성을 금암동 마을신앙에서 담아내고 있다고 판단된
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궐동의 것은 수용하면서 이러한 내용을 세교동에 전하였을 가능성도 전무
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금암동이 세교동과 비교하여 마을의 규모는 작았을지 모르나 산제당과 거북
바위 등을 통하여 마을공동체신앙이 왕성하게 전승되었던 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도 개발로 마을을 떠나간 주민들이 마을신앙을 전승하고 있다는 사실도 금암동의 전승력을 입증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셋째는 원동에 전하는 당의 유래담이다. 원동은 세 개의 마을로 구성되었는데 세 마을이 모두 당말
당(堂)집의 유래담을 전승하고 있다. 인접한 마을이면서 제각각 특색있는 유래담으로 전승시키고 있
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전승력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라 하겠다. 16)
15)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 이에 대한 근거를 수집하고자 하였다. 그간 오산천을 비롯하여 오산의 산과 들에 전하는 생태자원을 조사하고
기록한 오산의제 김우현사무국장과의 통화를 통하여 이러한 추정이 더욱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저도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옛날 오산천의 물길이 운암들로 하여 부산동 쪽으로 연결되어있었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는 매우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 오산의제 김우현 사무국장과의 전화인터뷰.
16) 원동의 역말과 당말, 절골에서 당집의 돌멩이 신격에 대한 유래담이 전하며, 인근의 우촌에서도 역말 당집의 유래담이 전승되고
있었다. 마을마다 동일한 설화의 내용이 변이양상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