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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이기도 하다. 제석 또는 칠석이라는 이름으로 쌀주머니를 모셨다는 것은 위급한 상황을 예비하기                                           169
                  위한 방책이었다. 먹고사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에 절대절명의 순간을 위하여 쌀주머니를 모셔두고                                             구비전승

                  위급한 상황을 대비하였던 것이다.
                    마을의 공동우물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으나 개인 가정에 우물이 있는 경우에는 집안의 우물                                           · 민속

                  에 치성을 드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나무를 시집보내는 풍속에 대한 기억도 경험도, 대감독의 존재도                                          · 경기도당굿과
                  생활과 밀접하기만 하다. 오산시의 민간신앙을 통하여 이러한 내용들을 짐작하고 옛 오산의 모습을

                  상상해 낼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경기재인청

                  1) 가수동

                    한편 가수동의 제보자 이규란 어른의 댁에서는 장남집이 아니라 일체의 가정신앙이 없었다고 한                                             /  성씨
                  다. 큰댁에서는 가정신앙의 다양한 면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이는 대부분 형제단위의 가족 집단에서                                          · 인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업신앙의 경우가 그렇다. 업이란 집안의 재물을 지켜주는 지킴이라고 여

                  기는데, 업을 모시는 집안은 장남집이며 차남이나 삼남 등의 집에서 업을 모시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

                  기가 어렵다. 이규란 어른 댁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아무튼 제보자의 큰댁에는 대문에 들어서면 항아리가 있었다. 제보자는 그 항아리에는 찧지 않은
                  벼를 넣어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뒤란에 터주가리가 두 개인데 거기에도 항아리에 겉벼(볍

                  씨)를 넣어두었었다. 그러나 그 볍씨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그리고 제석주머니를 모셨다. 제석주머니는 안방에 모셔두었는데 두 개였다. 제석주머니에는 찹쌀
                  을 넣어두었으며 칠석날 그걸 꺼내서 밥을 해먹는다.
                    제보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 댁에서는 정월 열사흗날, 칠월 칠석, 시월 상달에 개인적인 치성을 드

                  렸던 것으로 정리된다. 칠석은 제석만을 위하는 것이니 제외하면 정월과 시월의 고사가 관련성을 갖

                  는다. 정월은 농사가 잘되고 집안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의 치성이라면 시월의 고사는 집안과 농
                  사를 잘 돌보아주신 신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치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절차는 정월
                  과 시월고사가 같으나 제보자의 집안에서만 위하던 웅덩이에는 정월에만 시루떡을 바쳤다는 점만이

                  차이가 있다.

                    제보자 댁에서는 시월 상달에 가을고사를 지냈는데 팥시루떡을 해서는 성주에 먼저 드리고 뒤란에
                  터주가리 두 군데에 놓고, 외양간에 갖다 놓고 그 다음에는 집 뒤에 있는 홰나무에 갖다 놓았다. 그리
                  고 정월달에도 시루를 따로 쪄서 치성을 드리는데 이때는 등 너머 논 웅덩이에도 시루떡을 갖다 놓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제보자께서는 집안에서 웅덩이에 시루를 바치는 이유는 잘 모르지만, 웅덩이 앞에 있는 그 논이 큰
                  집의 논이라 아마도 농사가 잘 되라고 갖다 놓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이러한 신앙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은 화성시 신남동의 매호동에서도 조사된 바 있다. 매호동에서는

                  냇가에 인접한 논에 물로 인한 피해가 나지 않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터주가리를 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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