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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두곡동 171
송석조 어른 댁에서는 가정에서 모실 수 있는 다양한 신격을 숭배하였다. 터주, 업, 성주, 조왕, 철 구비전승
륭, 제석, 대감 등의 신격을 모셨었다고 한다.
업을 모신 업가리도 있었으나 현재는 터줏가리만을 모시고 있다. 업가리와 터줏가리는 매년 가을 · 민속
에 상달고사를 드리는 시기에 새로 하였다고 한다. 송석조 어른 댁에서는 ‘업가리에도 벼를 저장하여 · 경기도당굿과
두었다.’고 하신다. 그렇게 본다면 업가리에도 항아리를 두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업가
리에 항아리를 둔다거나 볍씨를 넣는다거나 하는 예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풍속이다. 이런
점에서 송석조 어른댁의 업가리 신앙은 특이하다 하겠다. 한편 업가리가 아니라 터줏가리에 항아리
경기재인청
를 둔 것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으나 터줏가리와 업가리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를 하고 계셨기에 구술한 자료는 신뢰가 있다. / 성씨
다음은 제보자께서 구술하는 내용이다. · 인물
“업가리, 터주가리 종○이네는 꼭 두 개씩 해 놨잖아. 근데 지금 다 없앴잖아. 여기 ○길이네는 아
직도 두 개 해 놓잖아. 우리도 항아리에 벼 들어 있어. 다 끝나고 가을에 농사를 다 짓고 나면 벼를 새
로 타작을 하잖아요. 상달에 고사지내고서 그 벼를 다시 쏟아 놓고 새 벼를 그 안에 다시 갖다 놓는
거예요. 꺼낸 거는 또 쪄서 먹어야지. 우리는 지금도 있어요. 매년 갈고, 가을에 고사 지내고 떡하고.”
구술의 내용으로 보아 업가리에도 항아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벼를
넣어두었으며 해마다 햇볍씨를 갈아 넣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다음은 가정에서 모시는 신격의 위상에 대한 구술이다. 이 댁에서 어떠한 신격을 최우선으로 하였
는가에 대한 확인인 것이다.
가을에 떡을 사면 제일 먼저 대청에 시루를 올렸다. 대청에는 성주가 좌정을 하고 있는 공간인 까
닭이다. 그리고 지금 성줏대는 없으나 옛날에는 굿을 하고 나면 새롭게 성줏대를 말아서 올렸다고 한
다. 그리고는 제석에 시루를 올렸다. 다음으로 터주에 시루를 올린다. 그 다음은 조왕, 철륭의 순으로
시루를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대감은 따로 시루를 하여 올렸다. 이렇듯 송석조 어른 댁에서의 가정
신앙은 일반가정에서 모실 수 있는 모든 신격을 숭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댁의 할머니 친
정동네에서는 칠석날 떡을 하여 제석에 올렸다고도 한다. 나머지 제석주머니의 쌀을 내어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이고 밀떡(부침개)을 부치고 하는 풍속은 다른 지역과 동일하였다.
5) 부산동
마을에 우물은 있었으나 마을단위의 우물제사를 따로 지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지
영 어른 댁에서는 가을 고사를 지내면 고사떡을 한쪽 갖다가 우물 앞에 놓고 비손하는 정도였던 것으
로 보인다.
가을에 고사를 지내면 먼저 대청에 시루를 올린다. 이는 성주신에게 먼저 떡을 올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