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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자         계기            이적            예지몽          성취담          결과
                    자료1     마을承旨       개울보다가        헤엄치는 돌                                  신으로 좌정
                    자료2      祖上        물고보다가         말하는 돌                                  신으로 좌정
                    자료3      先祖        과거 길에                       꿈에 돌을 봄       과거급제       신으로 좌정



                    누가 발견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는 심씨 집안의 조상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 마을의 승지도

                  마을의 큰어른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심씨 마을의 승지이니 이도 역시 심씨 집안의 조상이다.
                  그리고 돌이 물고기처럼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거나, 살려달라고 말을 한다거나, 꿈에 본 돌이 과거에

                  급제하도록 하였다는 것은 평범한 돌멩이가 아니라 신이(神異)하고 신성(神聖)한 돌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하여 마을의 신으로 좌정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물과 관련이 있다는 점도 중

                  요하다. 농사와 관련이 밀접하다는 것이며, 소망하고 있는 바를 성취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인 예가 자료3으로 드러난다. 개울을 건너기 전에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과제인 것인데 개울을 건

                  넘으로써 소원한 바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말의 당집에서 모시고 있는 돌은 마을신앙의 신
                  격으로서 손색이 없다. 농사를 잘되게 할 뿐만이 아니라 과거에서 급제하는 등 마을주민들의 소망하

                  는 바를 실현시켜주는 신성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넷째는 부산동의 경우 제관만이 신을 수 있다는 신발이 전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오산시의 부
                  산동이 신성한 지역이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부산(釜山)이란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검은 산’이다.

                  ‘검다’는 것은 ‘원천적 지혜’를 뜻하는 것이면서 ‘근원’을 상징하는 색이다. 또한 신성함을 의미하는 색
                  이 바로 검은색이다. 이에 부산동에 나라의 굿을 주관하였던 무속인들의 무리가 부산동을 찾아 거점

                  을 마련하였던 것도 우연의 일치라고만은 보이지 않는다.



                    고이왕이 왕위에 오르고 “5년(238) 봄 정월에 천지에 제사를 지냈는데 북과 피리를 사용하였다.”라
                  한 것에서 세상사를 주관하는 천지신명들께 제의를 올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제의를

                  올린 곳이 어디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238년 “2월에 부산(釜山)에서 사냥하고 50일 만에 돌아왔다.
                                                                                     17)
                  여름 4월에 왕궁 문기둥에 벼락이 치자 누른 용이 그 문으로부터 날아 나갔다.” 고 하였는데 여기의
                  부산은 바로 오산시의 부산동 가마뫼일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동의 위치는 용인시 부아산과 아산시
                  미추홀의 중간지점인 경기도 화성군 진위면 부산리일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부산동 가마뫼에 전하는 ‘오직 제관만이 신을 수 있다고 하는 신발 한 컬레’의 의미
      오산시사
                  가 새롭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또한 제물로 올리는 용떡의 의미와 유래도 백제본기의 내용을 통하여

                  추측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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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166           17)  『삼국사기』, 백제 고이왕 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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