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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졀에는 달도 두분이 도드시고 도 두분이 도드실졔 쳘궁 에 시윗살 멕여들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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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와 뎨셕궁 에 걸어두고 달하나 쏘와 내여 명모궁 에 걸어두고
(옛날에는 달도 두 개가 돋고 해도 두 개가 뜰 때 쇠로 만든 활에 화살을 들고 해 하나 쏘아 제
석궁-천상세계-에 걸어두고 달 하나 쏘아 명도궁(저승)에 걸어두어)
가즁 불젼에 들어갈졔 남북동 조선국, 아모면 아모동리 아모셩씨 한가즁, 수명장수하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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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친밀축수 졍성이로소이다
(불전에 들어갈 때 남북 해동 조선나라 아무면 아모 동네 아모 성씨 온 집안, 수명장수하기를
친함을 믿고 오래 살기를 정성을 들여 기원한다)
오산12제차 중 시루말은 다른 지역 시루말에는 없는 ‘창세신화’를 담고 있다. 이는 오산12제차의
특징으로 이종만에게서 도당굿을 학습한 이용우는 1980년대까지 경기도당굿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창세신화’가 들어있는 ‘시루말’을 구전했다. 1984년 4월 인천 동막에서 연행된 경기도당굿에서 이용
우는 장구를 잡고 열채와 궁글채를 두드리면서 시루말을 불렀다. 내용은 천하국(천하궁)의 당칠성이
지하궁에 인물추심을 다니다가 매화뜰의 매화부인을 만나 인연을 맺은 뒤에 선문이와 후문이를 얻고
선문이와 후문이로 하여금 천지의 혼돈을 없애고 선문이에게 대한국을, 후문이에게 소한국을 맡게
한다는 것으로 이는 이종만의 오산12제차와 내용이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동막도당굿 이후 이용우
외의 다른 화랭이들이 부른 ‘시루말’에는 이런 서사적인 내용없이 치국잡기식 마달(문서 또는 대사)만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오산지역에는 마을굿으로 경기도당굿을 지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찾기 힘들다. 경기재인청
우두머리인 도대방을 지냈다는 이용우의 부친 이종하와 이용우에게 도당굿을 전수해준 작은아버지
인 이종만(경기재인청 도산주를 지냈다고 함)을 비롯하여 그의 가계가 12대째 살았던 오산의 부산동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이용우가 생전에 주로 수원에서 활동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오산의 여
러 동네에서 마을신앙으로 산신제를 지냈거나 아직 지내고 있는 마을이 있는데 대부분 유교식으로
지냈다. 다만 부산동과 일부 지역의 유교식 산신제에 무속형태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경기도당굿
을 연행한 증거가 아닌가 한다. 또한, 일제강점기인 1937년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조선마을굿의
제의에 대해 조사해 편찬한 『부락제』 서문에 “조선의 부락제(산신제나 도당굿)는 20~30년 전까지는
상당히 성대하게 개최된 곳도 있고, 따라서 부락제의 존재도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후 혁신
오산시사 의 추세에 압도되어 쇠퇴해졌고 이에 따른 신락(神樂)이나 각종 행사도 폐지되어 그 규모 또한 점점
더 축소되었다.”고 밝혀 1910~1920년대 이후에 부락제가 무속형태에서 유교식으로 간소하게 치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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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쳘궁 : 철궁(鐵弓).
30) 뎨셕궁 : 제석궁(帝釋宮). 여기서는 ‘천상세계’를 뜻함.
31) 명모궁 : 명도궁(明圖宮)을 말함. 여기서는 ‘저승’을 뜻함.
236 32) 친밀축수 : 친밀축수(親密祝壽). 친함을 믿고 오래 살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