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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5년 오산지역 마을신앙에 대해 조사한 김용국은 부산동의 산신제에 무속형태가 남아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그 증거로 산신제 제상에 올리는 제물을 들고 있다. 부산동은 산신제 제상에
제물로 소머리, 닭 한 마리, 대구포와 과일을 올리는데 대구포를 올리는 것이 경기도당굿의 대구포를
올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산동 산신제 절차와 도당굿의 절차가 비슷하다는 점도
무속의 영향인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오산의 마을별 마을신앙을 싣는다.
<표 2> 오산의 주요 마을별 마을신앙
마을명 명칭 시기 특징
가수동 산제사 음력 10월 초
산신제 음력 10월 보름
가장동
우물제사 음력 7월 초
궐동 산신제 음력 10월 초하루
음력 정월보름
우물제사
두곡동 음력 10월
산제사 음력 10월 1일
무속 형태의 제의
부산동 산신제 음력 10월 1일
대구포 진상
서랑동 산제사 음력 10월 15일 전후
수청동 우물제사 음력 정월 보름
산제사 음력 10월 1일
은계동
우물제사 음력 정월 초하루
원동 당제사 음력 10월 15일
지곶동 당제사 음력 9월 그믐
*『2009년 오산시사』 민속편 내용 정리
오산에서는 많은 마을들이 <표 2>와 같이 유교식이나 유교와 무속 혼합형태의 산신제를 지낸 것으
로 나타난다. 이러한 유교식 산신제의 성행을 1793년에 설립된 공자 사당인 오산화성궐리사의 영향
때문으로 풀이하는 학자도 있다. 그 당시에는 현재의 수원시나 화성시, 오산시가 하나의 행정구역인
상태에서 정조 등 유교를 숭상하는 왕권이 이 지역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최고의 세습무 화랭이 가계가 12대째 거주하고 있던 오산시에 경기도당굿이 없었
다고 한다면 그것이 더욱 믿기 어려운 사실로 보이며 구전으로 이어지던 굿의 절차 및 내용이 그 가
오산시사
계의 이종만에 의해 오산에서 채록됐다는 사실도 오산시와 경기도당굿의 관계가 매우 가까웠다는 방
증이 아닌가 한다. 부산동 마을 입구 도로 가운데에 있는 왕버드나무 두 그루는 과거 부산동에 거주
제 하던 화랭이 이용우 가계의 선대들이 주축이 되어 당굿을 열면 아파트 단지 건설로 지금은 없어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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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이 나무까지 내려와 돌돌이를 돌았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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