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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북쪽의 가심산(佳心山)에 올라 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계속할 때 일경이 총을 발사하여 시위 군                                         333
                  중 4명이 중상을 입고 오산병원에 입원하였다. 이에 격분한 시위 군중들은 경찰주재소, 면사무소, 일                                         구비전승

                  본인 주거지들을 습격하였다. 이때 일경들은 시위군중의 수가 많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헌병수비대,
                  소방대의 응원을 받아 닥치는 대로 총칼로 위협하였으며, 결국 시위대는 해산되기에 이르렀다.                                              · 민속

                    다음날부터 일경은 주모자 색출에 혈안이 되어 10여 명을 수원경찰서로 구인하여 3주일 동안 유치                                         · 경기도당굿과
                  장에서 악독한 고문과 태형을 가하는 한편 일부는 재판에 회부하였다. 1924년 경성지방법원에서 11

                  개월 미결수(未決囚)로 있다가 3년 형을 선고받고 상고하여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경기재인청
                  참고문헌

                  독립운동사자료집 5권.                                                                                     /  성씨





                  35. 유태형(兪泰亨)                                                                                    · 인물

                  1942년 10월 30일 ~ 1996년 9월 17일

                    오산출신의 행정가이다. 오산시 서동(西洞) 433번지에서 헌진(兪憲鎭)의 3남 중 장남으로 출생하

                  였다. 본관은 창원(昌原)으로 호는 호석(湖石)이다. 오산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방송대 행정학
                  과를 졸업하였다. 내무부 행정사무관 승진시험에서 전국수석합격(1987년)을 차지하였고, 모범공무원

                  공로표창(내무부장관, 경기도지사), 옥조근정훈장 국민포장을 수상하였다. 오산읍에서 공직을 시작
                  하여, 화성군을 거쳐 경기도 과천시 감사실장·민방위과장, 경기도공영사업단 개발3과장을 역임하

                  였다.
                    1995년 6월 27일에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 지방선거로 치러진 민선 오산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
                  선되었다. 민선1기 오산시장으로 1989년 1월 1일 시로 승격한 지 6년 만에 치르는 첫 번째 직접선거

                  였기 때문에 선생의 당선은 매우 의미가 클 수밖에 없었다. 1952년, 1956년, 1960년에 실시된 간접·

                  직접 선거부터 따지면 1995년에 실시된 오산시장 선거는 통산 4번째 선거가 되나, 직선 오산시장으
                  로서는 1기, 시 승격 이후 오산시장으로서는 5대 오산시장이 된다.
                    불행하게도 그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재임 1년 2개월(1995년 7월 1일~1996년 9월 17일)만에

                  타계하였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그의 시정 방침은 ‘최고의 도시로 변화하는 오산’이었으며, 실행지

                  침은 시정경영의 무한책임·시민위주의 긍정행정·균형개발로 이익배분 등이었다. 슬하에 1남 3녀
                  를 두었으며, 묘는 서동 면화산(綿花山) 아래 가재골(佳哉谷)에 있다.



                  참고문헌

                  오산시 통계연보, 오산시 시정백서. 창원 유씨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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