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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윤응상(尹應祥)


                  생몰년 미상
                                                                               세종조부터 문종 사이의 문

                                                                             신으로 본관은 해평(海平)이
                                                                             다. 아버지는 성종 때 대사헌

                                                                             을 지낸 기반(起磻)이다. 오산
                                                                             에 해평 윤씨의 뿌리(오산시 외

                                                                             삼미동 방곡을 비롯한 문시 지
                                                                             역)를 내리기 시작한 사람으로

                                                                             통정대부 사헌부 감찰 군자감

                                       해평윤씨 선영                               정을 역임하였다. 윤기반신도
                                                                             비에 따르면 “통정대부(通政大
                  夫) 사헌부 감찰(監察), 군자감정(軍資監正) 등의 벼슬을 했는데, 지방 순방차 현재 종가가 있는 삼미

                  곡(三美谷)에서 잠시 쉬시던 중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이곳에 터를 잡으면 만대가 번성하
                  리라.”고 하였다.  기이한 현몽에 응상공께서는 매우 기뻐하시고 계시에 따라 그곳에 터를 정했다고

                  전한다. 묘소는 오산시 외삼미동 산 40 삼미곡(三美谷)에 있다.



                  참고문헌

                  해평윤씨 족보, 오산시사 2009.




                  38. 윤학영(尹學榮)


                  1898년 1월 12일 ~ 1966년 10월 15일

                                                                        농민운동가이자 교육가로 본관은 해
                                                                      평(海平)이다. 호는 삼은(三隱)이며 오

                                                                      산시 외삼미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려
                                                                      서 한학을 배웠고, 1923년에 해평윤씨

                                                                      종중원들과 뜻을 모아 삼미의숙(三美義
      오산시사
                                                                      塾)을 설립하였다. 초창기 삼미의숙은

                                                                      학비를 낼 수 있는 학생들은 학비를 냈

      제
      6                             윤학영 추모비                           지만, 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학생의 학
      권
                                                                      부형에게 소작지를 얻어주고 그 수입으
                  로 학비를 내게 했다. 어떻게든 어려운 학생의 집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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