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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이용우(李龍雨)
1899년 ~ 1987년
이용우는 경기도 화
성군 오산면 부산리 또
는 안말 원리에서 1899
년에 출생하였다. 전통
적인 세습무인 부친 종
하(鍾河)와 미지(巫女)
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신까지 포함하여 12
대에 걸친 세습무 집안
으로 경기도도당굿의
적통을 이었으며, 그의
가계는 경기재인청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부친 이종하와 숙부 이종만(鍾萬)은 1937년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와 아카마쓰 지죠(赤松智城)가
함께 펴낸 『조선무속의 연구』에 오산지역 무가 12제차와 경기재인청의 내력을 증거하는 『경기도 창
재도청안 1책 (1836년 헌종 2)』, 『경기재인청 선생안 1책(1851년 철종 1)』, 『경기도 창재청 선생안 2책
(1901년 광무 5)』의 문서를 제공했다. 이 조사에서 이종하는 11대 세습무였으며, 함께 보여준 이 문서
들은 경기재인청의 규율과 조목에 해당하거나 재인청 내 소속된 광대나 화랭이의 계보를 밝혀 놓은
것으로, 화랭이들이 봄·가을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굿을 했다는 내용 등이 있어 귀중한 자료다. 이
문서를 선생의 부친인 이종하가 보관·관리하고 있었으며, 그 집안이 팔도 재인청의 총본산으로 3대
에 걸쳐 도대방을 맡았다는 점이 이 집안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선생의 고조부 이계명(李啓明)은 효행으로 관에서 표창방(表彰方)을 받은 기록이 있으며 증조부 이
광달(李光達) 팔도도대방(八道都大房), 조부 이규인(李奎仁) 팔도도대방(八道都大房), 부친 이종하 팔
도도대방(八道都大房), 숙부 이종만은 도산주(都山主)였다. 재인청 조직을 살펴보면, 재인청은 광대
청 또는 화랑청이라고도 했는데 경기, 충청, 전라도에 도재인청을 두었다. 도청에는 대방을 우두머리
로 해서 도산주 2명, 그 밑에 집망 4명, 또 그 밑에 공원 4명을 두고, 다시 그 아래에 장무 2명을 두었
다. 팔도도대방은 대방중에 으뜸이었다. 선생의 부친부터 조부, 증조부가 조선 팔도 재인집단의 우두
오산시사
머리였던 것이다. 선생의 가계가 중요한 것은 그의 집안이 전통적인 세습무 가계였으며, 재인청을 운
영하는 실제적인 담당자였다는 점이다.
제 선생은 8세에 부친의 소실인 박금초(朴錦草)의 수양아들이 되어 판소리 창을 배웠다. 부친이 이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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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는 창극단을 따라 창을 배우며 전국을 유랑했는데, 서모와 송만갑(宋萬甲), 이동백(李東伯)이 명창으
로 판을 휩쓸었다. 이때 배운 판소리와 창극단을 따라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이 후에 선생이 도
344 당굿을 하며 무가를 창조적으로 구연하는 밑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