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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의 삶도 충실하게 살았다. 특히 본인 스스로 화랭이임을 자부했다. 도당굿 자체를 숙부인 이종만
                  으로부터 정통으로 전수받아 마을굿을 온전히 전승할 수 있었고, 도당굿을 집전하면서 화랭이의 역

                  할에 최선을 다했다. 거기에 일찍 판소리의 풍부한 사설을 접했고, 통도사에서 수학하여 이종만의 문
                  서를 독창적으로 변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단순한 무가 전승에만 그치지 않고,

                  창조적 변형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도당굿의 문서인 마달에 여러 가지 재담을 첨가하여 변형시켜는
                  창의력이 뛰어난 창조적 구비서사시인이었다. 비록 사후이지만 선생의 활약으로 경기도당굿은 1990

                  년 10월 10일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김헌선·시지은, 경기도 남부 도당굿 화랭이 미지의 계보와 의미, 민속학연구 21, 국립민속박물관 2007 / 김헌선,
                  경기도도당굿 화랭이 이용우(1899~1987)의 구비적 개인사, 구비문학연구 1, 1994 / 손태도, 우리무형문화재의 현

                  장에 서서, 집문당, 2009 / 박문정, 경기도도당굿의 현황 및 전승, 오산학연구 4집, 오산향토문화연구소, 2018.





                  47. 이정구(李廷龜)

                  1564년(명종 19) ~ 1635년(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문인으로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 또는 보만
                  당(保晩堂)·치암(癡菴)·추애(秋崖)·습정(習靜)이고, 시호은 문충(文忠)이다. 세조 때의 명신인 석

                  형(石亨)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문장으로 이름이 있던 현령 계(啓)이고, 어머니는 김표(金彪)의 딸이다. 윤근수(尹根壽)의

                  문인이다. 공은 문장가문에서 출생하여 가학을 통하여 성장하였다. 유년시절부터 비범한 재질을 보
                  이기 시작하여 8세에 벌써 한유(韓愈)의 「남산시(南山詩)」를 차운함에 놀라운 표현이 있었다.

                    공의 생애는 어디까지나 조정의 관리로서 소임을 다하는 것이었으므로 치군택민(致君澤民 : 임금
                  을 도와서 백성을 윤택하게 한다)의 이상과 이문화국(以文華國 : 글로써 나라를 빛낸다)의 관인문학

                  을 성실히 전개해 갔다. 이 점에서 그는 정통적인 사대부문학의 전범(典範 : 모범)이다.
                    공의 문학은 한편으로 선린외교에 있어서 문학이 가지는 공용성을 십분 발휘한 것으로 일단의 의

                  의를 갖는다. 시문집으로는 그의 문인인 최유해(崔有海)가 편간한 『월사집』 68권 22책이 전한다.
                    그리고 공이 1603년(선조 36)에 오산의 독산성을 기록한 <독산성기(記)>가 1899년 발행된 <<수원
      오산시사        군읍지(水原郡邑誌)>>에 실려있다.




      제

      6           48. 이정사(李廷師)
      권
                  1650년(효종 원년) ~ 1723년(경종 3)

    346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부평(富平)이다. 자는 여중(汝中)이며, 오산시 서동에서 출생하였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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