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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조광현(趙光鉉)
1909년 4월 24일 ~ 1974년 4월 24일
오산 출신의 지역사회 활동가이다. 평택 서탄면 내천리에서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순창(淳昌)이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오산공립보통학교(성호국민학교)와 경성부기학원을
졸업했다. 1930년 평택군 북면을 시작으로 1938년 오산면 서기로 정착한 후, 1945년 퇴직할 때까지
16년간 지방행정 업무에 종사하였으며, 퇴직 후 대한청년단 오산지구단을 이끌며 지역사회 활동에
투신하였다.
1950년 9·28 수복 후 오산의용소방대를 창설하고 초대 소방대장으로 피선되어 1960년 면장에서
퇴임한 이후까지 오랜 기간 소방대장으로 재직하였는데, 의용소방대는 해방 후 소용돌이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화재 진압은 물론 취약한 치안과 행정기능을 보완하는 무보수 자활단체로서 1982년
오산에 정식 소방관서가 개설되기까지 오산 지역사회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1954년 2백여
명의 사상자를 낸 수청동 건널목 대형 열차 충돌 사고 때에는 수십 명의 소방대원들을 이끌고 미군들
과 사상자 구조와 현장수습을 주도했는데 이 일이 널리 알려져 내무부장관 단체 표창까지 받게 되었
다.
1952년 초대 오산면의원으로 당선되어 내무위원장으로 봉사하다, 자유당 오산면 당위원장으로
1954년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면의회에서 면장으로 선출되었고, 1958년 주민 직접선거로 면장에 재
선되었다. 의회 간선에서는 13:1, 주민 직선에서는 70%의 지지를 받는 등 두 선거 모두 압도적인 지
지를 받았고, 이후 오산을 읍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각종 활동을 시작하여 1960년 1월에는 읍 승격과
함께 초대 오산읍장으로 연임되는 등 6년간 지역사회에 기여하였다.
선생은 지역사회활동가이자 면장으로서 오산지역 중등학교 설립과 지역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활동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오산중학교 설립인가가 나올 당시부
터 1950년 오산학원 초대 재단이사로 사재를 담보로 제공하는 등 이후 15년간 재단이사로 오산학원
발전에 기여하였고, 1955년 개교한 오산여중의 설립 추진위원장으로 학교 설립인가는 물론 구호물
자를 조달하여 교사를 신축하는 등 오산여중 설립에 많은 공을 세웠다. 또한 성호국민학교, 오산중학
교, 오산여중의 기성회장을 각 10여 년 이상 역임하면서 학교의 운영과 후학 양성에 기여하였다.
1962년 4월 선생은 김창순, 한세택 등 오산지역 유지들과 오산번영회를 조직하고 초대회장에 취임
하게 되는데, 오산번영회는 수원에 있던 화성군청사를 오산으로 유치하고 오산에 각종 기업체들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어 현재의 오산시가 발전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친 모임이
오산시사
다. 화성군청사 유치가 지역사회 개발의 기폭제가 된다는 점에서 오산과 남양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당시 7대 국회의원 선거전이 한참으로 어느 후보도 특정 지역을 선호할 수
제 없는 상황에서 번영회는 5·16군사정권의 주도세력과 깊은 인연이 있는 경남 출신의 조성래를 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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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장으로 영입하였다. 선생과 조성래는 새벽같이 통근열차로 중앙부처 장·차관들을 집집마다 방문하
는 열정을 보인 끝에 내무부의 조례개정을 선점하면서 결국 화성군청사를 오산으로 유치하게 되고,
352 1970년 6월 화성군청사가 문을 열게 되자 여러 유관기관들이 오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오산은 화성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