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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朗雷默)의 법호를 내렸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금산사지(金山寺誌). 중관대사유고(中觀大師遺稿). 이능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신문관, 1918. 오산학연구 5집.




                  56. 최병국(崔秉國)


                  1906년 2월 15일 ~ 1972년 8월 18일
                    오산시 탑동 115번지에서 출생한 정치가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일찍이 일본에 유학하여 와

                  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광복 이후 한청·대동청년단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1953년 7월 16일부터 1954

                  년 1월 24일까지 오산면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54년 5월 20일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1958
                  년 5월 1일까지 의정활동을 하였다. 1972년 8월 18일 고향인 오산시 탑동에서 작고하였다. 묘는 오산
                  시 탑동 산 16번지 선영에 있다.



                  참고문헌


                  역대면장 및 역대읍장 명단. 오산시사 2009.




                  57. 최정린(崔廷麟)


                  1760년(영조 36) ~ 1799년(정조 23)

                    오산시 두곡동(당시 수원부 초평면 두곡동)에서 출생한 효자이다. 자는 성서(聖瑞)이며, 호는 탑서
                  재(塔西齋)이고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1760년(영조 36) 11월 11일 부친 진복(進福)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으나 첫째가 죽어 장남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효성스러웠으
                  며, 맛있는 좋은 음식이 생기면 먼저 부모님께 공양하였으며 항상 조모님을 곁에 모시고 밥을 먹으면

                  서 조모님이 남긴 반찬을 주시면 어머님께 드렸다. 집안이 청빈하여 어머니께서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는 것을 항상 보고 자라면서 본인도 반드시 본받으려 애썼다.

                    공의 나이 10세에 부친이 칼에 엄지손가락을 다쳤는데 백약이 무효하므로 많은 동네 사람들에게
      오산시사
                  좋은 약을 물으니 어떤 사람이 혈갈이란 약이 있는데 사람의 피를 말려서 만든 것이라 알려주니, 공

                  이 방에 몰래 들어가 허벅다리를 찔러서 피를 내어 이를 불에 말려 부친의 다친 곳에 붙여드린 뒤에

      제
      6           효험이 있어 완치되었다.
      권
                    또한 1780년(정조 4) 가을에 모친이 분만으로 혈허병을 앓게 되어 매우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공이 목욕재계하고 신에게 기도를 드림은 물론 하늘을 향하여 울면서 호소하기도 하였으나 차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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