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전시가이드 2024년 08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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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Wave 006_112x162cm_mixed media on canvas_2023
지근욱 작가의 작품은 옵티컬한 리듬으로 인해 일찍이 기존 미술 장르에서 많 인 시간을 견뎌낸, 그리는 과정과 행위에 주목하게 한다.
이 보아온 익숙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결국 결과적으로 연상되어 남겨지는 것
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빛과 에너지로 가득 찬 광대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 작가에게 받은 작업 노트(2024.4.)에 의하면, 2024년 신작(‘SE-Dusts’, ‘SE-
는 우주의 파장이다. 라일리(Bridget Louise Riley/영국/1931-)도 광학 진동 Rings’)은 가상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Space Engine’을 경험하며 시작되었다
에 관심을 지녔기 때문에 시각 에너지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고 한다. 평면의 화면에서 수평, 수직으로 움직이던 방향성에서 벗어나 작품
관람자로 하여금 정서적 감흥을 배제하고 시각에 집중하게 했던 것처럼, 지 자체와 작가의 시선 모두 외부 세계의 다층적 관계망을 고려하여 보다 다양화
근욱 작가도 주제에 상관없이 시각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규칙적이고 정형 되면서 우주의 형태들을 바탕삼아 상호작용의 복잡성과 소통성을 안고 간다
적인 선의 파장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러나 작가는 주재료인 색연필의 선에 는 것이라고 파악된다. 작가는 보다 확대된 세계관을 펼쳐나가기 위해 다양한
따른 행위의 흔적과 단계적 과정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옵아트와 방안을 시도하는 중이겠지만 이의 해석은 오히려 관람자에게 맡기는 것도 하
는 결을 달리하는 ‘과정적 옵티컬 공간 연구’라고 자신의 작업을 칭한다. 그리 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미술은 그 자체로 우주의 표현으로, 거기에는 자
고 판화 전공자에 대한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은 편집증적으로 완 연이 있고 인간이 있으며 영혼이 있고 정체성을 지닌 존재가 있다. 이를 모두
벽을 추구하며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장인 정신에다 충만한 집중력을 자랑하 혹은 부분적으로 표현하느냐, 알아보기 쉽게 혹은 나만 알아볼 수 있도록 표
는데, 작가도 학부에서 판화를 전공했기 때문일까, 작품마다 빈틈없이 정제된 현하느냐와 같은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비평가들은 작가의 작
극도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품을 어떻게 보았을까. 박미란 큐레이터는 작가의 작품 안에 작은 요소들을 온
전히 들여다보고 작품에 시적인 감상을 불어넣었고, 김지연 비평가는 의지를
평면에 펼쳐지는 선의 강렬한 방향성은 ‘Inter-wave 006’에서처럼 좌우로 이 가지고 반복적으로 선을 그리는 행위를 지속한 작가를 격려하며 완성도 아래
동하거나 ‘Inter-shape(Collider)’의 방사형 구조에서처럼 밖으로 뻗어나가거 고여 있는 땀방울을 읽어냈다. 두 비평가 모두 작가의 철저한 이성적 선에서
나 중심으로 집결되는 이동성을 보이지만, 이는 화면의 표면에서 이루어지는 서정적 열정을 발견한 것인데, 주관적 비평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작품에 대한
움직임이자 이동성이다. 물론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결합체가 보다 복잡 해석의 든든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하게 나타나면서 평면 위에서의 상하좌우 이동보다는 화면의 겉과 속으로 공
간을 확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은 절대적인 균형에 의해 한쪽으로 치우치 지금까지 작가는 포멀한 사각에 머무르지 않고 shaped canvas를 활용하거
지 않으면서 무한한 운동성을 보장한다. 연속적인 선의 공명은 에너지를 지니 나 똑바로 세우는 게 아니라 각도를 주어 전시하거나 벽면 가득 넘치도록 선
고 파동하는 선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지만 비단 이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 들의 향연을 보여주는 등의 방법으로 바탕재나 전시의 형태를 다양화함으로
는 노동집약적인 색연필 등 매체의 물리적인 축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집 써 시각적 효과를 다르게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선과 색은 언제
중하게 만든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주변의 작가들이 모두 미디어아트 나 운동성을 지니고 움직였으며 이를 움직이게 한 것은 회화에서의 가장 기본
로 전환할 때 권유와 회유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한땀 한땀 붓질을 멈추지 않 적인 선과 획이었다. 사람들은 평면에 이러한 시각적 효과를 구현하는 것 이
았던 김홍주 작가가 떠올려지는 지점이다. 김홍주 작가가 표현하는 이미지들 상의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로도 이미 소중하다. 결국 역동적인 선
은 특별한 메시지나 상징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미의 공백을 주기 의 우주적인 공명이 선사하는 몰입적인 미감이 지금의 미술에서 얼마나 중요
위함이라고 했던 것처럼, 지근욱 작가의 이미지들에서도 오랫동안 켜켜이 쌓 한 가치를 지니는지를 다시금 깨달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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