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전시가이드 2022년 06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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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연안부두, 162x130cm, oil on canvas, 1969





                               2022. 6. 4 – 6. 30 더뮤지엄아트진(T.041-333-3729, 예산)







         설봉 김두환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상했다. 이러한 국내외 공모전의 입상 경력 외에도 동경
                                                        유학생들의 친목 도모와 회원들의 작품발표를 위해 결성한 《재동경미술협회전》
        고향을 찾다, 예산                                      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20대  후반의  나이인  1940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두환은  예산  시내
                                                        중심가에  양옥건물을  짓고  ‘김두환회화연구소’를  개설하여  예산  작가로서의
        글 : 신수경(충남대학교 연구교수)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개인 화실이자 사설교습소였던 이곳에서
                                                        그는 작품 제작은 물론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미술교습소는 대부분
                                                        해방 후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같은 제국미술학교 출신으로, 같은 해에 태어난
        김두환(金斗煥,  1913~1994)은  충청남도  출신의  1세대  서양화가다.  1913  이쾌대(李快大,  1913∼1965)가  1946년  서울에  성북회화연구소를  개설해  훗날
        년  예산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예산공립보통학교를  나와  서울의   한국현대화단을  이끌어갈  미술인들을  양성했고,  백영수회화연구소(1947),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유학길에  올라  가와바타미술학교(   남관의  창림미술연구소(1948),  이인성의  국화회연구소(1948)  등이  모두  해방
        川端畵學校)를  거쳐  1935년  제국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후 우리문화를 되찾기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문을 열었다. 그에 비해
        후  화가이자  교육자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일본의  《독립미술전》,  《이과전(二  김두환은 해방 전부터 미술교습소를 운영했다. 미술이 저변화되지 않았던 예산에
        科展)》을  무대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연속해서  《  회화연구소를 세웠던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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