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8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P. 218
왔다. 휘영청 밝은 달이 중천에 떠오르면, 아낙네들은 뒷마당 장독대 위에 정한
수 한 그릇 떠 놓고 먼 길 떠난 남편이나 자식들의 무사귀환과 무운장도를 기원
했다.
그럴 때 하늘의 달과 정한수 속의 달, 즉 천지간의 두 달이 그 여인과 함께하
게 된다. 따라서 그 기원의 대상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시집간 딸을
위한 기도도 있었을 것이고, 질병에 시달리는 가족의 쾌유도 빌었을 것이며, 술
주정을 일삼는 친정 오라버니가 제발 정신 차리고 들에 나가 농사일에 힘써달라
는 간절한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 같은 세상의 기원들을 공동체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세계 최고(最古)이자 최
대(最大)의 집단의식이 있다면 아마도 우리 전통의 강강술래가 아닐까 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을 한가위 보름달 아래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강강술래
는 우리 민족이 추구한 하늘과 땅과 사람, 즉 천지인(天地人)이 일체를 이루는 벅
찬 하모니(harmony)였다.
강강술래(Ganggangsullae)의 집단 에너지와 군무(群舞)의 아름다움은 결코 우리만
이 인정한 것이 아니다. 강강술래는 지난 2009년 9월에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됨으로써 인류공영의 문화유산으로 발돋움하기에 이르
렀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일(合一)하는 강강술래를 위해 음력 8월 15일 밤에 예쁘
게 한복을 차려입은 부녀자들은 마을의 가장 큰 공터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달
과 같은 둥근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소리 가사에 일가견이 있는 리더의 선창을
받아 ‘강강술래’라는 후렴으로 응대하는 합창을 부르며 빙글빙글 돌면서 뛰었
다. 그것은 놀이이자 하늘을 향한 기도였다.
218 노규수의 사회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