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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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당시 어쩌다 500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세뱃돈을 받는 날은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로또 당첨이 아마 그런 기분일 것이다.

                 역시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뿐만 아니라 구정동 윗
               말이나 주막거리의 어른들 댁에도 찾아가 묵은세배를 드리면서 세뱃돈 봉투를

               드렸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어른들에게 용돈을 드리는 풍습이었다. 거기에는

               함께 어울려 사는 홍익인본주의의 의미가 크게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40이 넘은 나이에서야 알게 되었다. 새해에는 더욱 주변을 돌아보며 상생의 마
               음가짐과 겸손의 몸가짐을 다짐하고자 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바로 ‘묵은 세뱃

               돈’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 소득의 재분배기능이자 사람 사는 훈훈한 정감의 교류 시스템이었

               다. 또, 남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까치까치 설날’에 할아버

               지 할머니에게 드린 묵은 세뱃돈은 ‘우리우리 설날’에 ‘세뱃돈’으로 다시 되돌려
               지는 구조였다. 차례를 지낸 후 마을 아이들이 세배를 오면 세뱃돈을 조금씩이

               라도 나누어 줄 수 있는 밑천을 마련해드린 배려였다.

                 또한 아버지가 마을의 어른을 찾아가 묵은 세뱃돈을 드렸던 것은 세뱃돈을 줄

               형편이 안 되는 그 어른도 누군가에게 떳떳이 세뱃돈을 줄 수 있도록 하거나, 행
               여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설날 조상들에게 차례라도 올릴 수 있도록 배려해 상

               차림 비를 슬쩍 놓고 가는 이웃돕기 성금 차원이기도 했다. 연말에 펼쳐진 훈훈

               한 평등주의 풍습이었다.

                 그러니까 자선행위일수록 받는 사람의 자존심까지 고려했던 것이 우리 민속

               설의 세뱃돈이었던 것이다. 명분 없이 그냥 돈을 줄 수는 없으니 ‘까치까치 설
               날’을 만들어 그 설날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또는 형편이 좋은 사람이 형편





             36 노규수의 사회 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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