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P. 34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 곱고 고운 댕기

                  도 내가 들이고 /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

                  리 /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셔요.




                 60년대 말~70년대 초 당시의 서울 구의동은 시골이나 다름없을 만큼 한적한

               전원 풍경이었다. 이른바 명당이라는 배산임수의 마을로 앞에는 한강이 흐르
               고, 뒤에는 아차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었다. 동네에 우물이 아홉 개가 있다 하

               여 붙여진 구정동(九井洞)의 ‘구(九)’와 산기슭 동네라 하여 붙여졌다는 산의동(山宜

               洞)의 ‘의(宜)’가 합쳐진 이름이 내 고향 ‘구의동(九宜洞)’이니 충분히 상상이 갈 것이

               다. 지금이야 물론 고층 빌딩과 아파트들로 인해 아차산도 쉽게 볼 수 없을 만큼

               변했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 겨울에는 우리 동네 한강 변에서 썰매와 스케이트
               를 탔었고,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정월 초·중순에는 강둑과 논둑에서 쥐불

               놀이를 즐길 만큼 목가적인 곳이었다.

                 그 구의동에서 나는 4남 4녀 형제의 막내로 자랐다. 대가족이었다. 그래서 내

               가 서열상 꼴찌인지라 모든 것이 뒤로 밀려났을 것으로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겠
               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 집에서는 가히 내가 왕이나 다름없었다. 줄줄이 위

               로 있던 형님과 누님 모두 나를 막내라 귀여워하셨고, 그래서 내 떼쓰기가 통할

               수 있었으며, 그런 막강한 위세 때문이었는지 설날에도 내가 받은 세뱃돈이 가

               장 두둑했다.

                 어린 시절 내가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풍
               성한 설 먹거리였고, 다른 하나는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설빔이었다. 그리고 가





             34 노규수의 사회 돋보기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