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P. 35
장 중요한 마지막 하나는 세뱃돈이었다.
특히 설날 세뱃돈이라는 것은, 돈을 만져볼 기회가 별로 없던 어린 시절에 ‘큰
재산’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래서 세뱃돈의 많고 적음으로 우리
꼬마 친구들의 서열과 신분이 정해지기도 했다. 세뱃돈을 많이 받은 친구의 위
세는 한동안 대단했었으니까. 당시 우리들이 집안 어른들이나 마을 어른들에게
세배를 다녔던 가장 큰 목적은, 대부분의 독자들도 공감하시겠지만 세배 ‘돈’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설날 전에도 미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물론 집안 어
른들과 마을 어른들에게 세배를 다녀오시곤 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것이
섣달그믐 무렵, 그러니까 음력으로 묵은해를 보내며 어른들에게 지난 1년의 보
살핌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묵은세배’였다. 윤극영의 동요에 나오는 ‘까치까
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의 어저께가 바로 그 묵은세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그 ‘까치까치 설날’에 어머니는 ‘우리우리 설날’에
대비해 차례상 음식준비를 하셨고, 아버지는 밤과 기타 과일을 손질하시면서 조
상의 신주를 모시는 지방(紙榜)을 붓글씨로 쓰셨는데, 그때 늘 여러 장의 봉투에
깨끗한 10원짜리, 100원짜리 지폐를 세어 넣곤 하셨다.
당시는 10원짜리 지폐가 통용
되던 때였다. 짜장면 한 그릇이 30
원 하던 1970년대 초 무렵이었으
니까 지금의 짜장면 값으로 환산한
다면, 당시 100원의 세뱃돈은 현재
15,000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따라 ▲ 나의 자녀 현하와 현지, 어릴 적 모습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