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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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면류관’이나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이다.”
그런데 바울이 정작 무엇이라 답합니까? “내가 복음에 있어서 나의 권리를 다 쓰지 않고
복음을 무료로 선포하는 것이다”(고전 9:18). 상급 신학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특히 하늘나
라에서 남보다 더 큰 상급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이 얼마나 허망한 답입니까?
바울은 왜 자신이 무료로 복음 선포하는 것 자체를 ‘상’이라 합니까? 그것은 고린도전서 3
장에서의 ‘상’과 연결해서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3장의 언어를 제대
로 이해하려면 앞에서 설명한 바울의 소명 사상과 연결해서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거기서
사도들이 하나님의 집으로 형상화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 각각 다른 임무를
받은 것으로 말합니다. 자신은 개척 선교사로서 기초를 놓는 임무를 받았다는 것이고, 자
기 뒤에 고린도에 온 다른 사도들, 베드로와 아볼로는 바울이 놓은 기초 위에 쌓아 올리는
임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베드로는 기둥을 놓는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합시다. 아볼로는 벽을 쌓는 임무
를 맡았다고 합시다. 그들은 같이 사도직으로 소명을 받되, 그 구체적 역할에서 이렇게 각
자 다른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은사로 자기가 맡은 기초를 잘
놓았다고 합니다(3:10). 즉, 올바른 복음을 복음에 합당한 방법으로, 즉 복음이 요구하는 하
나님에 대한 전적인 헌신과 사람들에 대한 온전한 사랑으로 선포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
금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순종하는 의인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의 언어와 데살로니가전서 2:3~11, 그리고 빌립보서 2:15~16 등의 언어로
풀어 말하자면, 누구에게도 오해받거나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자비량하는 희생적 사역
으로 그 교회들이 ‘책망할 것이 없는’ 또는 ‘흠 없는’ 교회 공동체들로 자라도록 기초를 놓
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의 언어로 말하자면, ‘금과 은과 보석으로’ 기초를 놓았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도는 올바른, 순수한 복음이 아니라 세상 지혜와 세상의 가치를 섞은 ‘복음’
을 선포하고, 또 복음이 요구하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헌신과 양 떼에 대한 온전한 사랑
으로 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를 섞어서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했다면 그가 하나님의 집 건축에 있어 자신이 맡은 부분을‘돌, 나무, 지푸라기로’ 지
은 것입니다. 그런 사도 또는 목사가 세워 올린 교회는 죄악이 섞인 ‘책망할 것이 많은’ 또
는 ‘흠투성이’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은 주의 종들의 사역을 ‘행위대
로 심판’하실 터인데, 그때 심판의 불이 하나님의 집의 그런 부분 또는 그런 교회를 태워
버릴 것입니다. 아까 말한 대로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죄악이 섞인 것은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교회를 지은 사도 또는 목사는 자신은 구원을 받되, 하나님 건축
에 있어서 자신이 맡아 쌓아 올린 부분, 또는 자신이 평생 지어 올린 교회를 잃어버리는 것
입니다.
이것이 3:15의 의미입니다. 즉, 3:15에서 ‘잃어버리다’ 동사의 생략된 목적어는 ‘상’이 아니
라 돌과 나무와 지푸라기로 지어져 심판의 불에 타 버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심판의 불이
하나님의 집 건축에 있어 바울이 맡은 기초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으로 찬란히 드
러나게 할 것입니다. 즉, 바울이 세워 올린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는 ‘책망할 것이
없는’ 또는 ‘흠 없는’ 교회로 찬란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최후의 심판 때 불에 의
해서 태워져 버리지 않고 남되,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으로 찬란히 드러나는 것,그것
이 바로 바울과 같은 신실한 사역자가 받는 ‘상’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빌립보 교회를 자신이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 때 자신
이 받을 ‘면류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
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