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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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웃을 착취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업가로서 어떻
게 부당한 이득 취하기를 거부하고, 좋은 상품을 만들어 이웃의 삶을 안전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으며, 공무원으로서 어떻게 뇌물을 거절하고, 공정하고 능률적인 행정으로 시민들
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까? 이 살인적인 경쟁의 시대에 상사에게 나를 모함하고 자
신의 이익을 취하는 동료를 어떻게 복수하지 않고 도리어 사랑할 수 있습니까?
나 스스로는(바울의 언어로 말하자면, ‘육신’으로서의 나는) 이런 것을 도저히 할 수 없습니
다. 성령에 힘입지 않으면 나한테 해코지한 사람을 한 번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일곱 번씩 일흔 번, 그러니까 무한히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한 번 용서
하기도 힘들지요? 그래도 우리 안에 한 번이라도 용서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그것은 성령
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이런 윤리적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때마다 성령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깨닫게 하고, 그것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주심으로써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아침 QT 말씀 묵상
을 통해서, 주 안에서 사귄 형제들의 권면을 통해서, 좋은 책들을 통해서, 음악이나 미술을
통해서, 또는 다른 여러 가지 방법들로 성령이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
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살면서, 윤리적 선택의 순간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더욱 민감히
헤아리며 그것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주시기를 더욱 절실히 기도해야 하는 것
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죄와 죽음의 법’(즉, 우리의 ‘육신’을 자극하여 죄를 짓게 하고
죽음을 품삯으로 얻게 하는 법—롬 7장)으로부터 해방된 의인인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
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즉, 생명을 가져다주는 성령에 힘입어 지키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삶으로써 ‘율법의 정당한 요구’를 성취하는 것입니다(롬 8:2, 4).
날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하심과 힘 주심을 간곡히 구하면서 살아도, 또는 “당신의 나라
가 임하게 하소서 … 우리를 (사탄의) 시험에 굴러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 악한 자로부터
구원하소서”라고 매일 주기도문을 되뇌면서 살아도, 우리는 때때로 사탄의 통치에 굴복하
여 하나님과 이웃에게 죄를 짓게 됩니다. 그리하여 누구도 칭의의 현재 과정(구원의 서정
의 언어로 말하자면 ‘성화’의 과정)에서 완벽한 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 모두는 행위대로 심판하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서 ‘의의 열매’와 ‘육
신의 열매’가 뒤범벅된 자들로,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어 우리에게 맡겨진 부분들을 금과
은으로만이 아니라 돌과 나무를 섞어 지은 자들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 ‘육신의 열매’ 또
는 돌과 나무의 요소들은 심판의 불에 타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아 우리는 칭의의 완성을 받고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 3:15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칭의 되고 하나님 나라로 이전되어 그리스도의 주권에 성령의 도
움으로 순종하려는 기본자세를 가지고 산 사람은, 때때로 사탄의 시험에 빠져 죄악을 저질
렀다 해도, 하나님께 완전히 등 돌리고 사탄의 나라로 가 버리지 않은 한, 그리스도의 중보
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칭의/구원은 우리 믿음의 시작점부터,
믿음 생활의 현재를 거쳐, 종말의 완성 때까지 철저히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4. 예정과 성도의 견인, 그리고 탈락의 가능성
1) 탈락의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