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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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갈 3:28).
로마서 1:3~4의 복음의 기독론적 정의와 1:16~17의 구원론적 정의가 사실 같은 의미를 가
진 것들이라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후자가 부각시키고 있는 칭의론을 전자가 부각시키
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통치를 대행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통치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함
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로마서 서문에 이렇게 앞뒤로 나오는 복음에
대한 두 번의 정의는 우리로 하여금 앞서 살펴본 대로 칭의를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에
서 하나님(의 아들)의 의와 생명의 통치에로 이전시킴의 뜻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
다.
로마서의 초두에 이 점을 시사한 사도 바울은 이 서신의 본체에서는 복음을 주로 칭의론
으로 전개하되 그 절정, 즉 8:31~39에 이르러서는 다시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
스도의 재림 때 있을 최후의 심판에서 그의 속죄 제사와 중보를 통하여 우리가 얻게 될 칭
의의 완성을 하나님 나라의 사탄의 나라에 대한 최종적 승리라고 설명합니다.
서두 1:3~4/16~17의 복음 정의(또는 로마서의 명제)와 말미 8:31~39의 복음 전개의 절정(
또는 로마서의 결론)을 이렇게 수미상관(首尾相關)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로마서 본론에서 전개하는 칭의론을 하나님 나라의 사탄의 나라에 대한 전쟁의 관점에서,
즉 하나님(의 아들)의 의와 생명의 통치가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를 멸망시켜 감, 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로부터 구속해 감의
뜻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4. 데살로니가전서와 고린도전서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아들/칭의의 복음
1) 데살로니가전서
바울은 가끔 복음을 ‘하나님의 아들’로 요약하고 정의합니다(롬 1:3~4, 9; 갈 1:11~12,
15~16; 고후 1:18~20; 살전 1:5, 9~10). 마가복음(1:1; 15:39)과 요한복음(20:30~31)도 그렇
게 하고, 히브리서(1:1~14; 4:14~16)와 요한계시록(4~5장)도 그렇게 한다고 볼 수 있습니
다. 우리는 바울이 그렇게 요약하는 로마서 1:3~4을 자세히 살펴봤지만, 그보다 먼저 그렇
게 요약한 곳들이 갈라디아서 1:16과 데살로니가전서 1:9~10입니다. 갈라디아서 1:11~17
에서는 자신이 다메섹에서 계시로 받은 복음을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요약하여 표현
하고는(“[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내게 계시하셨다, 그분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으로 선포
하도록 하기 위해서”—16절), 갈라디아서 본론에 가서는 이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칭의
론으로 전개합니다. 그리하여 갈라디아서에서도 바울은 로마서 1:3~4과 1:16~17과도 같
은 조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수의 학자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울 서신들 중에 데살로니가전서가 제일 먼저 쓰인
서신이라고 봅니다. 소수(꽤 많은 소수)는 갈라디아서를 먼저 쓰인 것으로 봅니다. 제 스승
인 브루스(F. F. Bruce)는 그것을 굉장히 강조했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대개 그 견해를 따
르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를 갈라디아서 뒤에 쓰였다고 보든지, 전
에 쓰였다고 보든지 바울의 초기 편지로서 그것이 주후 50년에 쓰였다는 것이 대부분의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많은 학자들, 특히 새 관점 학파의 학자들은 칭의론이 초기 편지인
데살로니가전서에는 나타나지 않고 그보다 5~6년 늦게 쓰인 것으로 보는 갈라디아서에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바울이 애초부터 칭의론을 복음 선포의 한
양식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었고, (안디옥과) 갈라디아에서 유대주의자들의 도전에 맞서 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