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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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본 바와 같이 브레데(Wrede), 슈바이처(Schweitzer) 등 이래 대부분의 학자들은 칭
            의론이 갈라디아서, 로마서, 빌립보서 3장에만 나타나고 다른 서신들에는 안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데살로니가전서에 ‘의’(디카이오쉬네,
            dikaiosyne)라는 명사나 ‘칭의 하다’(디카이오오, dikaioo)라는 동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러니까 그들이 앞에서 본 후커(Hooker)식 문자 실증주의, 원자주의 방식으로 해석을 해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에크디코스’(ekdikos, ‘원수 갚는 분’)라는 ‘dik-
            언어’(‘의’를 뜻하는 헬라어들, 디카이오쉬네<dikaiosyne>, 디카이오오<dikaioo> 등의 줄
            기)가 데살로니가전서 4:5~6에 나오는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5~6에
            보면 음행을 저지르거나, 형제를 둘러 먹는 자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원수를 갚는 분’이라
            고 바울이 경고합니다.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 때에 그들에게 원수 갚는다는 것입니다. 벌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4:5~6에서 바울은 최후의 심판을 생각하고, 흉악한 죄를 짓는 자
            들은 칭의(무죄 선언) 되지 못하고, 유죄 선언되고 벌을 받는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 아닙니
            까?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11~18; 5:1~11을 위시해서 1:10 등 여러 곳에서 주 예수 그리스
            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고, 그때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을 강조하며
            (2:19~20; 3:13; 5:23), 그 심판석에서 성도들이 ‘흠 없는 자들’로 판정되도록 두 번이나 기
            도합니다(3:13; 5:23). 이렇게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죄인들이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될 때 성도들은 ‘흠 없는 자들’이 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칭의론 아닙니까?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9~10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노를 받도록 예정한 것이 아니
            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도록 예정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1:10에 썼던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을 또 씁니다.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은 법정적 개념 아닙니까? 최후의 심판에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음을 뜻하는 것 아닙니
            까?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덕 입어
            그 진노를 받지 않도록 예정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칭의론이 아니면 무엇이 칭의
            론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시정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칭찬함으로써 핍박의 상황에서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음, 소망, 사랑의 삶을 계속 신실히 해 가도록 권면하기 위해서 쓴 짧은 편지
            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거기서 복음을 칭의론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범주로도 전개하거나
            강해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짧은 편지에서 ‘의’(디카이오쉬네, dikaiosyne)와 ‘칭
            의 하다’(디카이오오, dikaioo)의 ‘의미의 장’(semantic field) 안에 있거나, 자신의 칭의론을
            구성하는 요소들인 개념들, 즉 하나님의 심판, 원수 갚음(에크디코스, ekdikos), 흠 없는 자
            로 판정됨, 진노로부터 건짐 받음,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등을 이렇게 많이 언급하며, 율
            법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놀라울 정도로 믿음을 강조합니다(1:3, 7~8; 2:10, 13; 3:2,
            5, 6, 7, 10; 4:14; 5:8). 그리하여 그가 구원을 칭의론의 범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에게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단순히 ‘의’(디카이오쉬네, dikaiosyne)라는 명사나 ‘칭
            의 하다’(디카이오오, dikaioo)라는 동사 자체가 안 나온다는 이유로 데살로니가전서에는
            칭의론이 없다고 주장하는 서양학자들의 해석 방법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분석적
            방법이 많은 장점을 가진 것이나, 그것이 도를 넘어 원자주의, 문자 실증주의가 되어 버리
            면 역효과를 낳게 됩니다. 그런 비현실적인 방법을 피하고, 데살로니가전서 1:9~10에 요약
            된 복음을 적어도 그 서신 내의 3:13; 4:6~7; 4:14; 5:9~10, 23 등에 있는 바울의 가르침들
            과 연결해서 해석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도 하나님의 아
            들의 복음을 칭의의 범주로 선포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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