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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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데살로니가전서 1:9~10, 특히 10절에 요약된 복음을 데살로니가전서와 다른 바울 서
신들에 나타난 서로 연결되는 생각들에 비추어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마셜(I. Howard Marshall)과 함께 물어야 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복음
을 선포할 때 종말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하늘로부터 와서 그들을 장차 올(즉, 최후의 심
판에서 있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하리라고 가르쳤다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어
떻게 그런 구원을 이루리라고 가르쳤을까? 제가 데살로니가전·후서 주석을 쓰면서 전에
쓰인 여러 주석들을 참조하는데, 마셜(Marshall) 한 사람만 이 질문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
다. 다른 주석가들은 10절에 그런 질문이나 그런 질문에 대한 설명이 명백한 문자로 나타
나지 않으므로 그런 질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성경 주석가들이 가끔 빠지는 문자
실증주의의 한 예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질문
을 마땅히 제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어떻게 인간들
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할 것인가를 설명도 하지 않으면서 덮어 놓고 그렇게 하리라
고 선언만 했다고 믿기도 어렵지만, 데살로니가인들이 또 그런 선포를 덥석 받아들였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 아들의 대속의 제사로서의 죽음에 근거하여
그래서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어떻게 인간들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할 것이
라고 가르쳤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데살로니가전서 자체에 다 있습니다. 우선
이 짧은 편지에 두 번, 그러니까 4:14과 5:9~10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즉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죽음의 형식’(the death formula)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었다”(예를 들어, 고전 15:3; 롬 5:8; 14:15; 고전 8:11; 고
후 5:15 등. 이것은 헬라어 숙어로 번역된 형식인데, 그것의 아람어 원형은 ‘넘겨줌의 형식’
입니다. 예를 들어, 롬 4:25; 갈 1:4 등).
이 형식은 바울 이전 교회에서 이미 복음 선포의 한 양식으로 형성된 것이므로(고전
15:3~5), 바울이 여기 4:14과 5:9~10에서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죽음
의 형식’은 항상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심, 자신을 우리를 위한 대속의 제사로
바침을 말합니다. 이 점이 5:9~10에서 뚜렷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진노를
받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도록 예정하
였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속죄 제사여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고 또는 우리 죄를 씻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받
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10의 복음의 요약에서 하나님이 ‘죽
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킨 그의 아들 예수가 우리를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
원할 것’이라고 한 바울이 조금 있다가 5:9~10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위
해 대속의 죽음을 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도록 예정하셨다”
라고 하니, 우리는 후자(5:9~10)가 전자(1:10)에 간단히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
음(‘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의미를 전개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1:10의 복음의 요
약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를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신의 ‘대속의 죽
음’을 통해 구원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함축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로마서 5:8~10에도 같은 생각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죽음 또는 그의 ‘
피’로 우리가 의인이라 칭함 받고 하나님께 화해되어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