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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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판단하고 과격하게 표현했다는 것은 그가 그것에 대해서 오랫동안 깊이 고민하고 근
본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뜻합니다(참조. 고후 3장). 그러기에 그는 자신은 더 이상 모
세의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놀라운 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고전 9:20).
우리는 앞서 고린도전서 15:23~28에서 바울이 로마서 1:3~4에 요약된 예루살렘 교회의
복음을 풀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져 하나님의 우편에 등극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 ‘상속’받은 하나님의 대권으로 사탄의 세력들을 무찔러 가고 있다고 설명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바울이 종말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제거할 최후의 원수
는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15:53~57에서 바울이 종말에 주 예
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과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죄와 함
께 죽음을 최종적으로 제거하고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오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최후의 원수인 죽음을 없앰을 말하는 두
구절 고린도전서 15:23~28과 15:53~57을 합쳐서 보면,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 8:31~39에
서와 같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도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또는 주로서 이
루어 가는 구원을 ‘사탄의 나라를 무찌름’이라는 묵시적 틀 안에서 보면서도, 우리 인간의
칭의(죄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하나님 나라로 회복시킴—참
조. 고전 15:50)의 완성과 그 열매로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얻음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
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고린도전서 15:53~57에 있는 사탄의 세력들(율법, 죄, 죽음)에 대항하여 퍼붓는 승
리의 웅변은 로마서 8:31~39에서 사탄의 세력들에 대항하여 퍼붓는 승리의 웅변과 병행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데살로니가전서 1:10과 마찬가지로 여기 고린도전서
15:23~28과 15:53~57도 로마서 1:3~4과 1:16~17이 나타내는 사실, 즉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은 곧 칭의의 복음이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바울 복음의 한 중심 범주로서의 칭의론, 그리고 기독론적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하는 칭의론
이와 같이 칭의론은 데살로니가전서와 고린도전·후서에도 나타납니다. 그것이 로마서, 갈
라디아서, 빌립보서 3장에만 나타난다는 브레데(Wrede)와 슈바이처( Schweitzer) 이래 만
연된 견해는 죄를 인간의 근본 문제로 보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항상 염두에 두며 그
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선포한 바울의 신학적 구조를 깊이 살피지 않고, 또 칭의론을 표
현하는 어휘들과 같은 ‘의미의 장’(semantic field)에 속하며 칭의론을 함축하는 언어들을
무시하면서, 비현실적인 문자 실증주의적 해석 방법에 의존한 데서 기인한 그릇된 견해입
니다.
새 관점 학파는 슈바이처(Schweitzer)의 견해를 계승하면서 바울이 칭의론을 유대주의자
들과 싸우기 위해서 늦게 개발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도 옳지 않습니다. 제가 저의 첫 책
이래 여러 곳에서 논증했듯이, 칭의론은 바울의 회심과 이방 사도로서의 소명을 가져온 다
메섹 도상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하여 바울이 얻게 된 신학적 전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에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칭의론은 바울이 그의 이방 선교 첫날부터 사용한 복음 선포의 한 범주여서, 오늘
우리가 그것을 데살로니가전서와 고린도전·후서에도 함축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
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서신들에도 칭의론이 암시되어 있다는 것과 그것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그리고 빌립보서 3장)에만 전개되어 있다는 것을 함께 인식하면서, 새 관점 학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