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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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사람이라고 비난하면서 그의 사도직을 부인하는 것에 맞서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체
험한 그리스도의 현현을 통해 회심하고 사도직에로의 소명을 받았음을 자서전적으로 진술
하며 자신의 사도직을 변증합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육신적 관점’(즉, 유대 민족주의적
관점)에 의거하여 그리스도를 판정하여, 다윗 왕조를 재건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로마의 지
배로부터 구원하지 않은 예수는 메시아(그리스도)일 수 없고, 도리어 율법의 저주를 받고(
신 23:21; 갈 3:13) 죽은 거짓 메시아라고 생각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고후 5:16a).
그러나 그는 다메섹에서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져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는
하나님의 아들, 만유의 주이심을 체험하고는(갈 1:15~16; 고전 9:1 등),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그리스도(메시아)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고후 5:16b). 그때
터득한 올바른 이해를 그는 5:14과 5:21에 두 번 되풀이하여 진술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
메시아)는 단순히 정치체제로서의 다윗 왕조를 재건하는 분이 아니라 다윗 왕조가 땅 위에
서 반영해야 했던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분이고, 예수가 그의 대속의 죽음으로 바로 그
메시아적 과업을 성취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5:14과 5:21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 모두의 대표/대신으로 죽으신 것과,
그 죽음은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 제사여서 우리를 의인 되게 하는 사건이었다는 것, 즉 우
리가 용서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하나님 나라)로 회복되게 하는 사건이었다는 것을 강
조합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그것(즉, 복음)을 믿어 그의 모든 죄, 심지
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여 하나님의 원수 노릇 한 것까지 용서받고(참조. 롬 5:8), 의인
이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죄로 말미암
아 하나님과 뒤틀린 관계를 갖게 된 아담적 인간이 새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의미를 알고 믿음으로써 자신이 ‘새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5:17). 바울은 이렇게 5:14과 5:21, 그리고 5:19(‘그들의 죄를 그들의 부채로 셈하
지 않고’)에서 보통 칭의론을 전개할 때 언급하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그것을 덕 입
어 의인 됨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과거 교회의 핍박자로서 하나님의 원수 노릇 했음을 들어 자신의
사도직을 부인하는 대적들에게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현재의 맥락에서 자신의 칭의를
‘화해’의 그림 언어로 바꾸어 더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즉, 하나님이 당신의 원수 노릇하
는 자신의 죄를 용서하고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켰다(칭의 하였다)는 것을, 하나
님께서 자신을 당신에게 ‘화해시켰다’라고 표현하여(5:18),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과거에
가졌던 적대적 관계가 이제 화평과 사랑의 관계로 변했음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칭의’나 ‘
화해’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됨을 나타내는 그림 언어인데, 자신의 사도직의 변
증의 맥락에서 후자의 뉘앙스가 더 효과적이므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죄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의 사역 전체를 하나님께서 세상을 당신께 화해
시킨 사역이라고 지칭하고(5:19ab) 그 사역에 대한 선포(즉, 복음)를 ‘화해의 말씀’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지만(5:19c), 그리스도의 사역을 칭의의 언어로 표현하는 말로 본문을 결론
지음으로써(5:21), 바울은 화해가 근본적으로 칭의와 같은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러한 이해
를 바탕으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변론하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당신께
화해시켰다는 것, 그런데 화해시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도로 소명하여 ‘화해의 말씀’을
선포하여 ‘화해를 도모하는 사역’을 감당하게 했다는 것(5:18, 20)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린도전서에도 칭의론이 암시되어 있고 고린도후서에는 거의 전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 서신들에서 우리가 율법의 행위들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