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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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하면서 비로소 그것을 개발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Word Biblical
Commentary” 시리즈 내에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주석을 꽤 오랜 시간을 두고 쓰고 있는데,
이 짧은 편지를 깊이 살펴보면 볼수록 그것과 갈라디아서, 로마서, 빌립보서 등의 후기 편
지들 사이에 내용의 연속성이 아주 강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 예로 여기서 이 초기 편지의
아주 중요한 구절 하나를 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9~10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5~10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이 자
기가 선포한 복음을 핍박 중에서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받았다는 것을 칭찬합니다. 그
리고 그들이 이 복음을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와 기타 지역에까지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었
다고 칭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곧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와 기타 지역 사람들이) 우리(바
울과 실라와 디모데)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너희들 가운데 처음 선교하러 들어갔는지(
어떠한 행태를 취했는지, 어떠한 자세로 선교했는지), 그리고 너희가 어떻게 우상들을 버
리고 하나님께 돌아서서 사시고 참된 하나님을 섬기는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하나님
께서] 일으키신, 하늘로부터 오는 그의 아들, 즉 우리를 장차 올 진노로부터 건져 낼 예수
를 기다리는지”를 말하였음을 보고합니다(살전 1:9~10). 여기 굵은 글씨로 쓰인 부분은 바
울이 전하여 데살로니가인들이 믿게 된 복음의 요약입니다.
제가 한 논문에서 데살로니가전서 1:9~10에서 바울이 자신이 데살로니가에서 교회 개
척 당시 선포한 복음을 요약하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더니, 캠브리지(Cambridge) 대학
의 신약학 교수 후커(Morna Hooker)는 제가 그 두 구절들에 없는 사상들을 그 속에 주입
해서 읽었다고 비판하며 제 견해를 반박하였습니다. 평소 아주 예리하고 현실적인 판단력
으로 다른 학자들의 비현실적인 주장들의 풍선들을 곧잘 터뜨리곤 했던 후커(Morna
Hooker) 교수는 그곳의 내용을 다섯 마디로 정리하고는 바울이 겨우 그 다섯 마디로 복음
을 선포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1) 너희들의 우상들을 버리고 사시고 참된
하나님께 돌아서라, 2) 그분을 섬겨라, 3) 하늘에서 오실 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려라, 4) 그
의 이름은 예수인데,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 5) 그분이 우리를
다가오는 진노로부터 구출하실 것이다. 후커(Hooker) 교수는 바울이 복음을 선포할 때 예
수의 죽음이나 부활을 이렇게 부차적으로, 겨우 지나가는 식으로 언급했을 리가 없다는 주
장도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다른 논문에서 바울 서신들에 있는 여러 개의 복음의
요약들을 이런 식으로 그것들만 뚝 떼어 물리학자가 원자(原子) 다루듯이(atomistically), 게
다가 거기 쓰여 있는 문자들에만 집착하며 해석하는 것의 비현실성을 지적했습니다. 그리
고 데살로니가전서 1:9~10의 복음을 바울이 자신의 이전 교회에서 이어받아 자신의 여러
서신들에서 인용하는 복음의 요약들(참조. 롬 1:3~4; 3:24~25; 4:25; 고전 15:3~5 등)은 차
치하고라도, 적어도 같은 편지 데살로니가전서 4:14; 5:9~10; 3:13; 4:13~18; 5:1~11 등에
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 및 재림에 대해서 말하는 내용들, 또는 그들과 유사한 내용들과 연
계하여 위의 다섯 마디의 하나하나를 풀어 가면서 복음을 선포했다고 보아야 함을 논증했
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3개월 동안 복음을 선포하여 데살로니가인들이 데살로니가전
서 1:9~10에 보고된 대로 믿게 되었을 때, ‘왜 그들이 그때까지 섬겨 온 신들이 우상들인
가’, ‘그가 선포하는 하나님은 왜 사시고 참된 하나님인가’를 설명하면서 선포했겠지 덜렁
1:9의 “너희들의 우상들을 버리고 참 하나님을 섬겨라” 하는 말만 무슨 주문 외듯이 되뇌
었겠습니까? 설령 바울이 이 말만 했다 한들 데살로니가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였겠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2:11에 바울은 자신이 그들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나라와 영광으
로 부르시는 분’이라고 하며, 그런 ‘하나님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가르쳤다고 상기